Ⅰ. 시작하며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작금의 현실은 전지구적 공동체라는 개념을 주요한 관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일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고민하던 시민성 개념을 초월하여 지구촌 사회의 공통적 문제에 주목하게 만들었으며, 빈곤·환경·안보·불평등·성 착취 등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라는 공생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세계시민의식 함양이라는 측면에서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고(UNESCO, 2015), 국제적인 도전 과제들의 대응 방안으로 지식·역량과 기능·태도 등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UNESCO, 2013). 이러한 흐름 속에 한국은 ‘세계화’및 ‘국제화’를 앞장서서 선도하고 있으며(강순원, 2010: 69),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다양한 역량의 강화를 교육적 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세계시민교육은 평화교육, 국제이해교육, 인권교육, 지속가능발전교육 등의 이름으로 그 토대를 마련해 왔던 사실에 주목하며, 다양한 교육적 논의가 담겨있는 포괄적 개념으로 간주된다(정우탁, 2015). 결국 세계시민교육은 특정한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거나 분절적 논의들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고, 이에 대한 실현을 위한 시민 참여를 강조하게 된다(박환보, 조혜승, 2016: 202).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의 가치 중 ‘평화’는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으나, 분명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서보혁, 정욱식, 2016: 16). 시간과 공간에 따라 ‘평화’는 개념의 결을 달리하고, 각기 다른 관점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추구하는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평화’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실천가들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평화교육을 구현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은 세계시민교육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시민교육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성장을 추구하며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에겐 ‘평화’라는 말이 제법 익숙하게 다가온다. 다문화시대가 도래하고, 다양성을 마주하는 사회가 되면서 각 주체들이 지닌 ‘차이’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고 있으며, 남북의 화해·협력 분위기와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국가 차원의 평화 분위기 조성 역시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미투 운동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이렇듯 ‘평화’는 어느 때부터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끊임없이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이상적인 상태로서의 평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평화’가 우리 삶 속에서 지속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세계 곳곳은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담보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분단 현실과 마주한 한국 역시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소망하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들로 인해 남북 협력의 모습을 그려내기가 용이하지 않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와 지역 사회의 갈등은 사회적 이슈를 생산해내기 바쁘고, 학교와 사회에서 자행되는 폭력적 사건들과 심각한 자살률의 수치는 우리의 모습이 평화롭지 않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회 구조적 차원을 넘어 개개인의 내면에서 ‘이너피스’와 같은 내면적 평화로의 접근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화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해 큰 고민을 갖지 않거나, ‘평화문맹’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1) 그러나 평화적이지 않은 현실은 수없이 많은 갈등과 충돌을 야기 시키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외면하기에 평화문맹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행복한 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내면화하며 실천을 통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평화교육’이다.2)
평화에 대한 사고의 확장은 평화교육에 대한 열망 역시 이끌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평화교육은 인권교육, 인성교육, 생태교육, 환경교육, 지속가능한 발전교육, 갈등해결교육, 국제이해교육, 젠더교육, 페미니즘교육, 성평등교육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Harris et al., 2003: 106). 한국에도 평화와 평화교육을 연구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천하고자 하는 평화교육 단체가 증가하고 있으며, 질적인 성장 역시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화교육 단체로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비폭력평화물결(NPC)’, ‘한국비폭력대화센터(NVC)’, ‘어린이어깨동무’, ‘개척자들’, ‘평화교육 프로젝트 모모(피스모모)’,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산하의 ‘갈등해결센터’, ‘사회갈등연구소’, ‘갈등해결과 대화’, ‘회복적정의 평화배움연구소 에듀피스’, 좋은교사운동본부에서 만든 ‘회복적 생활교육센터’ 등이 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평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홍순정, 2007: 12). ‘평화’라는 단어 자체가 다의적이기 때문에 각자가 받아들이는 이미지도 다르고, 이에 대한 실현 방법 역시 다양하게 접근하기 때문이다(모가미 도시키, 2006: 140).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평화’를 ①평온하고 화목함, ②전쟁이나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3) 따라서 평화는 개인의 내면적 상태인 심리적 평안함과 사회구조적 측면에서의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후자를 대표하는 평화학자 요한 갈퉁(Galtung, J., 1964, 1969)은 평화 상태를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와 구조적·문화적 폭력까지 해결된 적극적 평화로 구분지어 설명한다. 라틴어 ‘팍스(pax)’는 정복으로서의 평화를 의미하지만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에서는 ‘사랑의 평화’를 뜻하기도 한다(고병헌, 2006; 서보혁, 이찬수, 2018). 희랍어 ‘에이레네(eirene)’는 휴전이나 쌍방협정과 계약에 의한 현상 고착으로서의 평화를, 히브리어 ‘샬롬(salom)’은 건강, 부유함, 통일, 충만함 등의 적극적 복지를 의미한다(고병헌, 2006). 또한 러시아어 ‘미르(Mir, Mиp)’는 평화적인 세상을 의미한다(김강녕, 2014). 이와 같이 평화적 상태를 주요 개념으로 삼는 평화의 정의가 있다. 반면, 개인의 내면적 상태에 주목하는 평화개념도 있다. 인도어 ‘샹티(Santi)’는 인간 내면세계의 통합을 의미하고, 편안한 마음을 중요한 요소라 전제한다(최관경, 2009). 불교에서는 온갖 집착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평화로 정의한다. 물론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원효대사의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 대표적인 예이다(서보혁, 2019).
이와 같이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평화는 어떤 교육 실천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습자(참여자)에게 전달되는 교육목표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장에서는 평화적 관계, 즉 인간관계의 소통이라는 측면에 주목하며 평화교육의 의미가 실천가들에게 어떻게 다가서고 있는지 접근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교육 실천가들이 교육 현장에서 수용하고 있는 평화교육의 개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일반적으로 정의된 평화교육의 개념을 근거로 평화교육 실천가들에게 내면화된 평화교육의 개념이 무엇인지 내러티브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교육 실천 현장에서 평화교육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실천 현장에서 발현되는 평화교육의 개념을 정리하고, 더 나아가 실천가들이 느끼는 평화교육 현장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 요청되는지 검토할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평화교육의 지평이 확대될 수 있는 제안과 실천가들의 지속적 활동이 유지되기 위한 문화 기반 조성을 위한 제언을 통해 그 논의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 문제를 가진다.
첫째,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평화교육의 개념과 내용을 어떻게 내면화하고 있는가?
둘째,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실천 현장에서 평화교육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
Ⅱ. 연구방법: 문헌 분석 및 내러티브 연구
이 연구는 학문적으로 정의된 ‘평화교육’의 개념을 확인한 후, 평화교육 실천가들이 현장에서 수용하고 내면화한 ‘평화교육’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둔다.
연구의 시작 단계에서 연구주제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구성하는 문헌 검토 작업은 중요한 과정이다(이종승, 2009: 104). 문헌 자료를 더 많이 수집할수록 연구 대상 집단의 이해는 더욱 깊어지고, 이후 해석 과정을 거치며 그들에 대한 심층적 통찰이 깊어지기 때문이다(윤택림, 2004: 114).
이 연구는 다양한 형태의 문헌 자료들 중, 학문적으로 정의된 평화교육의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국에서 발행한 학술논문과 단행본 저서를 확인하였다. 단행본 저서 중 번역서는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발간한 것이라 판단하여 포함시켰다. 우선 학술논문은 한국에서 평화교육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보는 1980년대 이후에 발표된 것을 기준으로, ‘평화’ 혹은 ‘평화교육’을 제목 또는 본문에 사용한 논문들로 선정하였다. 또한 평화교육과 인접한 다른 분야의 논문까지 포함하여 1차적으로 35편의 논문을 살펴보았다. 이 중에서 평화교육의 개념을 명확한 문장으로 제시하지 않은 논문은 제외하여 최종적으로 16편을 선정하였다.4) 다음으로 단행본 역시, 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평화운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평화교육을 다루고 있기에 이에 대한 서적도 포함하여 10권을 선정하였다.5) 이상 16편의 학술논문과 10권의 단행본을 통해 문헌 분석을 하였다.
이후 실천가들이 내면화한 평화교육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내러티브 연구로 연구 문제에 접근하였다. 평화는 폭력을 줄여가는 과정이며, 삶의 전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함을 전제한다(이찬수, 2016: 86). 평화교육은 평화를 우리 삶 속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사회구조적 변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평화교육 및 평화 운동에서 실천 현장은 매우 중요하기에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활용하는 질적연구(qualitative research)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현장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정주진, 2015: 235). 이에 따라 질적연구의 한 분야인 내러티브 연구(narrative study)를 통해 실천 현장 속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한다.
내러티브는 개인이 겪어 온 삶의 이야기들에 표현된 경험들에서 출발하는 연구방법으로(Creswell, J., 2015: 95), 경험을 이해하려는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다(Clandinin, D, J. 외, 2007: 60).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이야기 형식으로 타자에게 전달되고 감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공동체의 질적인 변화를 촉진시키고 그 폭이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신동일 외, 2006: 58). 그러므로 내러티브 연구는 다른 방법론들과는 차별적으로 ‘경험’에 대한 의미를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킨다(Clandinin, D, J., 2015: 48). 따라서 연구자와 연구참여자6)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며, 연구자는 연구참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하여 글로 표현하는 과정들을 잘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 연구의 참여자는 첫째, 평화교육 실천가로서 활동 기간이 3년 이상이고, 둘째, 현재 평화교육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며, 셋째, 현재 연구자들과 함께 활동하거나, 과거에 활동한 경우, 혹은 평화교육 관련 심포지엄이나 워크숍에서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였다. 이는 적절한 라포(rapport) 형성을 통해 연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서로 조화를 이루고, 친근함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라포는 연구 진행 과정에서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적절히 통제되어야 하는데(Seidman, I., 2009: 205), 이를 충족하는 조건으로서 참여자를 선정하였다.
내러티브 연구를 위한 심층면담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자료수집·자료구성 방법으로서 이 연구에서는 반구조화된 면담을 시행했다. 미리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추가 질문을 하거나 질문을 변경함으로써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어떠한 경우에는 준비했던 질문을 하지 않음으로써 참여자가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심층면담은 2018년 8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참여자별로 2~3시간씩 각 3~4회 진행하였다. 주로 함께 평화교육을 진행할 때,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였고, 이 때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따로 약속을 잡았다. 보충 면담이 필요한 경우 전화상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면담 내용은 사전 동의 후 녹음하였으며, 녹음 자료는 전사하여 활용하였다.
연구참여자는 <표 1>과 같다.
이름 | 성별 | 연령 | 학력 | 평화교육 활동 기간 |
단체 소속 또는 운영 | 다른 경제 활동 |
---|---|---|---|---|---|---|
하양 | 남 | 28세 | 석사 과정 재학 | 3년 | 서로함께 소속 |
✕ |
자올 | 여 | 38세 | 석사 졸 | 4년 | 평화안녕 소속 |
✕ |
느루 | 여 | 54세 | 대졸 | 9년 | 공감대화 운영 |
✕ |
당당 | 여 | 55세 | 석사 졸 | 3년 | 샬롬서클 운영 |
사회복지관련 (상황에 따라) |
참여자 및 단체의 이름 등의 정보는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다.7)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인 별칭을 스스로 짓기도 한다. 이는 사회적 지위나 나이 등에서 발생하는 서열 현상을 없애고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하기 위한 하나의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 등이 지어준 이름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불리었으면 하는 별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참여자의 별칭을 연구에서 사용하더라도 본명이 공개되지는 않지만, 평화교육 현장에서 쓰이는 별칭을 사용하면 익명성이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별칭을 임의적으로 부여하였다.
1차적으로 구성된 면담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참여관찰을 병행하였다. 연구참여자인 실천가들과 함께 평화교육 진행자로 참여하면서 평화교육이 어떠한 모습으로 펼쳐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자로서 관찰한다는 것은 연구 공간에서의 생생한 행동을 통해 강력한 통찰을 제공받는다는 의미한다(Phillips & Carr, 2006: 92). 특히 이 연구를 위한 관찰은 교육 현장 밖에서 진행되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진행자로 직접 참여한 것이었기에 수업 분위기를 더욱 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교육 현장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뒤, 다시 검토하게 되는 참자들의 내러티브는 더욱 심오한 분석 및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Ⅲ. 평화교육의 다양한 개념 검토
평화교육은 ‘평화’와 ‘교육’의 합성어다. 사전적인 의미는 ‘평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풀이만으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평화’라는 단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평화교육도 다양한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살펴본 평화교육에 대한 개념들을 유목화하면 다음의 아홉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평화교육은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평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이항재(1995: 131), 엄정애 외(2004: 35), 김정환(2007: 346), 최관경(2009: 9), 오기성(2015: 272) 등은 평화교육을 교육 목적, 내용, 방법 등의 기준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둘째, 평화교육은 갈등과 폭력에 대응하는 것 또는 갈등과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다. 힉스(Hicks, 1993: 20), 이삼열(1992: 269), 갈퉁 외(1997: 147), 해리스 외(2011: 47-48), 노희정(2012: 106), 정주진(2015: 215), 박영주(2018: 214), 변종헌(2018: 287), 서보혁 외(2018: 66-67), 오덕열(2019: 103) 등은 폭력과 분리해서 평화를 설명하기 어렵듯이 평화교육 역시 갈등과 폭력의 개념을 빌어 이해하고자 했다.
셋째, 평화교육은 다양성 수용을 전제로 하는 활동이다. 정주진(2015: 215)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평화교육이 실천될 수 있다고 말한다. 평화롭지 않은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는 모두 평화교육이라 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넷째, 평화교육은 평화능력과 자질을 기르는 교육이다. 이경태(2005: 83), 홍순정(2007: 9), 원미순(2013: 101), 황세경(2014: 3-4)은 평화를 삶 속에 구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양하고, 비폭력적인 갈등 전환 방식을 배우는 것을 강조한다.
다섯째, 평화교육은 평화에 대한 민감성과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이다. 이윤희(2018: 309)는 폭력과 억압의 구조에서 벗어나 평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개인 및 사회가 평화감수성과 민감성을 내면화하는 것을 평화교육의 주된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논의했다.
여섯째, 평화교육은 비평화적 상태에 대한 비판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다. 박채복(2007: 30), 김병연(2011: 60)은 비판적인 인식을 통해 평화 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함을 설명하였다.
일곱째, 평화교육은 자기 성찰을 통한 배움의 과정이다. 김용신(2017: 70)은 학습자에게 성찰적인 학습 기회를 부여하여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평화의 관점을 형성하고, 평화를 향한 적극적인 태도를 기를 수 있게 하는 활동으로 평화교육을 정의하고 있다.
여덟째, 평화교육은 관계 형성에 관한 역량강화 교육이다. 박보영(2009: 84)은 서로 간의 이해와 관용을 통해 더불어 사는 관계 형성에 평화교육이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홉째, 평화교육은 인권 신장에 토대를 두는 교육 활동이다. 강순원(2000: 85-86), 데이비스(Davies, 2014: 10)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인권에 고민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학문적으로 정의된 평화교육의 개념들을 검토하였다. 다음 장에서는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평화교육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내면화된 개념들이 교육 실천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표현되는지 확인해 보도록 한다.
Ⅳ. 실천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본 평화교육의 의미
평화교육을 대하는 마음이 매우 순수하고 깨끗하게 느껴지는 ‘하양’은 평화교육 실천가로 활동하면서 형성된 궁금증들을 해소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평화교육 역시 인권, 페미니즘, 민주주의, 탈분단, 장애인, 난민, 동물권 등 다양한 사회이슈에 비추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교육은 사회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내면화되었다.
학부에서 미디어를 전공했는데, 미디어 속 소수자들의 재현에 관심이 생겼어요. 예를 들어 ‘여성과 미디어’라는 수업을 통해 여성의 모습에 주목하게 된 거죠. 그래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미디어로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워낙 실력자들이 많아서 고민하다가... 그 방법이 미디어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교육을 통해서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교육은 미디어와 다르게 사람들과 오랜 시간 눈을 맞추며 호흡할 수 있고, 변화의 지점을 바로 감지할 수 있기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양은 자신의 꿈을 평화교육으로서 펼치고자 했다. 교육 활동은 학습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평화를 교육으로 풀어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 생각한 것이다.
‘서로함께’의 워크숍을 통해 평화교육을 경험하면서 어떤 이론과 방법에 토대가 있는지 대략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평화교육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단체에서 담아내는 교육철학, 진행자와 참여자 사이의 관계, 문화·예술을 활용한 교육 방법론 등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 통일교육 현장에서나 대외활동 하면서 느꼈던 부족함을 채워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워크숍 첫 강의를 듣고 바로 단체에 후원신청을 했어요.
하양은 평화교육과 만나기 이전에 통일교육 단체에서 프로그램과 교안을 개발하며 강사 활동을 했었다. 이 역시 평화로운 사회를 꿈꾸며 시작했었지만, ‘통일’이 주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한계를 느꼈다. 이와 다르게 평화교육은 우리 사회 속에 잠재하는 폭력의 패턴을 인식하고,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보았다. 아울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실천을 통해 평화로운 세상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양에게 평화교육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가까이 다가서게 해주는 종합선물세트였다. 다양한 방법과 다채로운 만남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로함께’는 교육워크숍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 운동을 병행하는 단체이기에, 하양에게 다가 선 갈증들을 풀어내 주는 존재였다.
‘평화’와 ‘평화교육’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실천가들은 난감해했다. 하양은 이 질문에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다고 하며, 그렇게 답하는 것이 평화교육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원에서 ‘평화’와 ‘평화교육’에 대한 정의가 과제로 주어졌었는데, 그 질문은 제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이럴 때 ‘어떤 것 같다’라는 느낌이 전해지는 어구를 공유하곤 해요. 문익환님의 ‘꿈을 비는 마음’에서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김현경 님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 ‘환대라는 것은 장소를 주는 행위이다. 우리는 장소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 가미카와 아야의 『바꾸어 나가는 용기』에서,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에 연대하고, 이를 엮어 나가는 일’, 그리고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Gill Fell의 말, ‘더 이상 내가 이기면 자동적으로 당신은 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아닌 사회’ 등으로 평화를 표현하죠.
하양은 평화와 평화교육을 정의하는 것에 매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타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평화교육의 특성 상, 어떠한 정의에 맞고 틀림을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적에 있는 문구나 평화 연구자의 말을 통해 평화를 표현했다. 누군가가 이야기한 내용들을 느낌으로 다가서는 모습이었다.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경험들이 있다. 하양은 평화교육을 ‘잠시 멈춤’의 순간으로 은유화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하도 궁금해 하셔서 가족 톡방에 올렸던 내용이에요.
제가 하는 평화교육의 정의는 “나의 말·행동·일상이 다른 존재에게 폭력이 되는 상황과, 그것을 당연한 것·일상적인 것·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구조적·문화적 요인에 ‘잠시 멈춤’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그것의 수행을 거부하며, 대안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들”이에요.
대부분의 실천가들은 평화교육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육 활동으로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학습자의 생각이 변화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평화로워지기를 바란다. 일상 속 반복되던 폭력적인 상황들을 의식하지 못했던 상태에서 벗어나, 문제적 상황을 낯설게 살펴 볼 수 있고,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민감성을 기르는 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평화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려면 그 반대의 문제 상황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제주도의 예멘인 난민 사건, 매년 반복되는 퀴어 문화 축제의 혐오적 반대론자들, 일베 회원들의 폭식 투쟁 등을 바라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폭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참 마음이 아파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 그 존재만으로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을 거듭할수록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하양은 대상을 존재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도우는 것 또한 평화교육의 과제로 생각했다.
애기 때 잘 먹으면, “어우~ 잘 먹는다.”, 똥 싸면, “아~ 잘 쌌네.” 하면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그런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존재만으로는 충분치 못한 상황들이 생기죠. 그래서 존재로 조금씩 직면할 수 있게 하는 것,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더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것들이 다 평화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걸 가족들한테 공유함으로써,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폭력을 거부하고 잠시 멈춤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평화교육인 것 같아요.
평화 연구 초기부터 현장에서의 실천성이 함께 강조되어 왔듯이, 하양의 평화교육은 내면화된 자신의 생각을 교육 현장에서 발현시키는 실천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에게 친근히 다가서는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 ‘자올’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는 가운데 평화교육을 접하게 됐다. 우연히 접했던 평화교육을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든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라 선과 악이 분명했어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상황들이 생기고, 그 반대의 경우들도 접하게 되면서 갈등이 많아졌어요.
학부 1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기독교와 평화교육’을 수강했는데, 그 수업에서 우치무라 간조라는 신학자를 알게 됐고, 평화교육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때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뭐 특별한 철학도 없어보였죠. 그러다가 제 마음의 평화가 필요한 시기에 후배의 추천으로 평화교육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어요. 큰 기대 없이 그냥 참석했고, 서클8)을 처음 경험했어요. 결국 그 때도 뭐 배운 게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후 학내문제가 있었는데, 저희 교수님께서 학교의 모습이 옳지 않다면서 전략을 짜고 단식 계획을 세우셨어요. 조교로 있던 저는 같이 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학교 측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예전 같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왜 불편할까 생각해보니 평화교육 워크숍이 떠오르더라고요. 폭력은 꼭 폭력으로 맞대응해야 하는지, 비폭력적인 길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커졌지요. 워크숍에서는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기에 난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달라진 거죠. 그게 평화교육의 힘인 것 같아요.
자올은 평화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 채 평화교육 워크숍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교수자가 지식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했다. 즉, 가르치지 않는 가운데 배움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이는 일방적인 강의 형태의 모습을 거부하는 평화교육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강사이기에 앞서 삶 속에서 평화를 직접 실천하려는 자세를 가진다. 자올은 실천가들이 타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평화교육의 실천적 성격을 느꼈고, 자신도 이들과 같이 살아가기로 마음먹게 된다.
왼손잡이인 저를 보고 사람들은 ‘그러다 흘릴 것 같아서 내가 보고 있었어.’, ‘아이고 그러다 흘리지.’ 등의 이야기를 주로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풀꽃(평화교육 실천가)이 저를 쳐다보고 있길래 조금 떨렸었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 보고 있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또 어느 날 제가 모임에 10분 정도 늦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오히려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와. 숨 좀 돌려.”라고 말해 주었어요. 저는 이 사람들과 무언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사람들이랑 일한다면 나도 즐겁게, 나 자신과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화교육을 진행하기에 앞서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자올은 서로에 대한 평가와 판단 대신 응원과 지지가 이루어지는 공간,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실수마저 환영받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평화교육은 또한 자기 자신과 타자를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개선하여 삶의 태도를 바꾸고 사회 변혁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둔다.
가장 큰 변화는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고, 그 다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에요. 예전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했기에 ‘이러면 안 돼.’, ‘그렇게 해야지.’로 판단했고, 제 자신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삶의 태도가 바뀌니까 다른 사람을 보는 자세도 변화됐어요. 이전에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에 예민해지고, 민감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이 사람은 이 때 불편하구나.’, ‘나는 이럴 때 불편한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었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고 보았던 부분들이 ‘쟤는 이래서 그렇구나.’라고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평화교육은 가르치고 잘 이끌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교육적 통념과는 달리 ‘가르침의 힘’은 약하고, ‘실천의 힘’은 강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그 실천의 힘은 ‘배움의 힘’을 기반으로 한다. 자올은 그 매력을 통해 평화교육 실천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올은 평화교육에서 강조하는 공동체적 연결성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존재들이 통합되어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성의 존재감이 높은 가운데 서로가 연결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나’라는 개별성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것들과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평화적인 상태라고 생각해요. 평화교육은 나라는 존재의 개별성, 나랑 연결된 다른 존재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훈련인 것이죠. 물론 연결된 존재들은 인간일 수도 있고, 자연물일 수도 있고, 신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 존재들과의 연결성을 확인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평화감수성 혹은 사회감수성일 수도 있고요. 말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결국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 나의 느낌은 어떤지,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까지 함께 훈련하는 것, 그것이 평화교육인 것 같아요.
평화감수성은 평화에 대한 지식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평화롭지 않은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민감성을 길러 평화 능력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을 말한다(김기표 2014: 43-73). 이러한 면에서 자올은 평화감수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열정을 확장시키고 있다.
항상 침착함을 지니고 있는 ‘느루’는 기간제 교사 경력이 많았기에 다른 참여자들과 달리 평화교육을 교육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또한 평화교육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공감대화’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약 10여 년간 기간제 교사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IMF가 오면서 계약직인 기간제 교사들이 당시에 대거 정리됐고, 저도 밀려난 사람 중 하나였어요. ‘과연 내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이 좋았던지, 아니면 그 길밖에는 몰랐던 것인지... 지금 학교 밖 선생님도 하고 있고, 아무튼 학교를 넘나들며 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느루는 육아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가 평화교육을 알게 되었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평화교육에 입문하게 되었다.
결혼을 늦게 해서 아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이 아이에겐 나이 많은 부모가 앞으로 어떤 요인으로 작용될까? 이런 부분이 염려 됐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온라인 육아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는데,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슬로건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나는 어렸을 때 배려를 많이 받고 자랐나?’하는 궁금함이 생겼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배려하는 거지?’라는 질문도 떠올랐어요. 갑자기 ‘배려’라는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러다가 결혼생활이 평탄치 못한 언니 둘과 오빠가 눈에 들어왔는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상담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고, 교육을 전공하다 보니 계속 지시하는 방식을 취했어요. 그래서 일상에서도 교사 말투가 나온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요. 이런 것들을 바꾸고 싶었는데 어느 날 ‘비폭력 대화’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이트에 들어가 우선 교육을 받았죠. 저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물 흘러가듯이 아이를 키우며 평화교육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가족들을 잘 보살피고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던 평화교육 공부는 느루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느루는 예민하고 날카롭던 예전 모습에서 이제는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부드럽게 변화했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맞닥뜨릴 때, 예전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스스로 이것을 알아차리고 조정할 수 있는 단단함이 생겼다고 했다.
저는 생긴 건 둥글둥글하지만 엄청 예민하고 샤프하게 사람들을 바라봤었어요. 지금도 물론 문득 문득 예전 상태로 돌아갈 때가 있어요. 제가 되게 피곤하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하는 어려움이 있을 때는요. 그렇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회복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역시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호불호가 너무 명확했기에 대학 친구들이 겁나서 연락도 잘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그런데 평화교육을 통해 제가 몰랐던 부분들이 둥글어 진다고 해야 할까요? 한 2~3년 정도 명상 어플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우고 하다 보니 점점 부드러워지는 나를 보고 있어요.
평화교육은 느루에게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실천 과정 속에서 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예민한 자기 모습을 인지하게 되면서 수양의 과정을 통한 실천적 삶을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
느루는 평화의 개념을 일상 속에서 찾고 있다. 일상이 편안해야 평화롭다고 느꼈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 스스로를 돌보고, 같이 살아가는 이들과 마음 모으는 것을 평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평화는 일상이에요. 일상이 편안한 상태. 사람들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계속 자기를 비교하고 경쟁시키면서 스스로를 달달달 볶거든요. 저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렇지만 일상이 편안하다고 해서 나태해 지거나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계속 연마하는 것이죠. 일상의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기도 하고요.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있을 테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상태로 진입하는 것, 그것이 평화인 것 같아요.
느루는 경쟁이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모습을 편안하지 않은 상태로 보았다. 평화는 이러한 상황을 초월하여 자신과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보고 주변을 살피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평화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일상이 편안한 상태를 평화라고 느끼는 느루의 인식은 학생운동 경험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대학생 시절,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을 맞아 괴로웠던 기억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이는 모습을 폭력적인 상황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평화교육 실천가들의 성향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시위를 하거나 모여서 투쟁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군집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요.
87년도 대학 3학년 때, 박종철, 이한열 이런 분들하고 비슷한 세대라서... 시위 현장에 갔다가 저도 최루탄을 맞았거든요. 그 때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로 인해 경찰이 모여 있거나 시민들이 군집한 모습조차도 되게 두려워요. 그런데 세월호 상황이 일어났을 때는 저도 모르게 광화문으로 나가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의 삶? 그것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일상이 깨지는 것, 저는 그것 자체가 너무 두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일상은 좀 편안하고 어떤 두려움이 다가오더라도 외부적 압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평화교육이지 않나 싶어요.
정리하면, 일상을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평화교육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여러 가지 활동과 교육이 평화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느루는 일상을 평화롭게 살기 위해 평화교육이 필요함을 피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을 평화교육이라 정의하고 있었다. 결국 느루에게 평화교육은 평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평화롭지 않은 상태를 스스로 성찰하고 그 문제를 해소하는 것, 타자와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고 갈등을 전환하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부드러운 겉모습과 달리 내적 단단함과 내면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당당’은 목회자인 남편과 ‘샬롬서클’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당당은 평화교육 실천가로서 살아온 기간은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짧지만, 평화교육을 접한 후 지속적으로 배운 것을 실천하며 지내왔다. 공부방을 운영하던 당시 평화교육을 경험한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을 곁에서 보며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평화교육의 입문 계기였다.
인천 지역 교회에 남편이 청빙을 받아 2004년부터 목회를 시작했어요. 이 지역에 와보니 IMF 이후로 조손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공부방 같은 것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국가보조금도 받지 않은 상태였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한 아이가 와서 제게 공부방을 열어달라는 거예요. 자긴 갈 곳이 없고, 다른 데 가고 싶지도 않다며 공부방을 열어 달라고 졸랐어요. 결국 우리 아이 둘 하고 7~8명 정도로 방과 후 무료 공부방을 열게 되었죠. 당시 아이들은 정서적인 부분이나 습관에도 문제가 많았고 너무 폭력적이었어요. 욕하고 때리고 싸우고... 그때 저는 학습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잘 먹이고 평화로운 정서를 갖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때 아는 선생님께 평화교육을 부탁했어요. 그 분이 2년 간 공부방에 오셔서 봉사로 아이들을 지도해 주셨어요. 저 또한 선생님께 배운 내용을 아이들과 일상에서 3년 정도 꾸준히 했더니 정말 달라지는 아이들이 보였어요. 말투도 부드러워졌고, 의사 표현도 많이 달라졌지요. 그 전에는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소리 지르고 싸우고 물건을 내팽개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졌어요. 필요한 것을 이야기로 표현할 줄 알게 되고, 욕하거나 소리 지르는 것이 사라졌어요.
당당은 아이들과 함께 공부방에서 평화교육을 만났고, 그것을 실천하며 지냈다. 그 과정 속에서 점차 원하는 것을 표현할 줄 알게 되는 아이들을 보았고, 서로 간의 다툼도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다. 이렇듯 교회나 공부방을 통해 평화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에는 평화교육 단체를 운영하기에 이른다. 당당은 평화교육이 꾸준한 실천을 전제한다면 분명히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 믿고 있다.
당당은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평화교육을 배웠고, 그 경험을 살려 복지기관에서 일할 때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하던 일을 정리하게 되면서, 무리가 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을 찾았는데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접해왔던 평화교육 실천가로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되었다.
큰 수술을 두 번 했을 정도로 많이 아팠어요.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된 거죠. 다시 직장에 복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회복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튼 아픈 계기로 일을 정리하게 되었죠. 그 때 남편이 제안을 했어요. 둘이 같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평상시에 했었는데, 평화교육 센터를 한 번 운영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많이 격려해주고, 지지해주고, 도와주었어요.
당당은 평화교육을 통해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을 배웠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자기성찰은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타인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솔직하게 느낌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최종적으로 당당은 평화교육을 진행하고 알리는 것을 뛰어 넘어 필요한 곳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천가가 되고자 했다.
저는 하루 일과 중에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평화교육을 접한 이후에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들이 익숙해졌고, 이러한 훈련이 몸에 많이 밴 것 같아요. 감정 조절이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서로 간의 관계에서 경청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보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어요.
사실 저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해요. 그런데 이걸 하다보니까, 감정 찌꺼기가 계속 남아있는 것은 더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솔직하게 이야기 하게 된 거죠. ‘내가 이런 이유로 힘드니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제는 솔직하게 당당하게 말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평화교육을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스스로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평화교육 실천가가 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도 더 많이 배워서 필요한 곳에 기여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가 동등함을 전제하는 평화교육에서는 개성 넘치는 각각의 존재들을 존중한다. 당당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 배려, 지지하는 모습에서 평화교육의 장점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평화교육은 참여형 워크숍으로 평등하게 진행되기에 함께 하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사람마다 내면에 각각의 빛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빛은 다양한 것이죠. 모양도, 색깔도 다른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하나의 시각으로 평가하잖아요. 평화교육의 이러한 면에서 굉장한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기에 안전한 공간 내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평상시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까지도요.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의 확보는 참여자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비판이나 판단 없는 이해와 수용, 사적인 이야기의 보호가 그러한 공간을 만드는 데 더욱 필요하다. 당당의 평화교육에서는 따뜻한 분위기의 조성과 개개인을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동력으로 표현되고 있다.
평화교육은 삶 속에서의 실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실천하면서 조금 더 나은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한 사람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이에요. 그렇지만 자신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기여할 것들,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을 함께 하면 그 꿈들은 확장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평화교육은 큰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거시적으로 한반도에서의 평화 통일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평화교육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당당은 한국 사회에서의 분단 문제 역시 평화교육의 배경 속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평화교육은 특정 교과와 같은 분과 교육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전제되어야 하고 서로 융합할 수 있는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평화교육은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 가듯, 타자도 존중 받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지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다.
Ⅴ. 마치며
지금까지 학문적으로 정의된 평화교육의 개념과 함께 네 명의 평화교육 실천가들의 내러티브를 통해 평화교육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연구과정을 통해 정리된 평화교육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평화교육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하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평화교육은 보통 원으로 앉는 형태를 취하며 모두가 평등한 위치를 전제한다. 따라서 모든 참여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교육의 개념 역시 다양하게 정의되는 것에 대체로 거부감이 없었으며, 각자 내리는 정의에 대해 인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평화교육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획일성을 답습하는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교육 실천 현장에서 학문적으로 정의되는 평화교육의 개념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차용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교육은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로 의미지울 수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지만, 그 다름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서로 다른 존재자들의 공존 가능성을 열어준다.
둘째,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개인적 차원과 관계적 측면 모두에서 평화교육의 개념을 찾고 있었다. 우선, 자기 돌봄, 자기감정 조절, 자신의 느낌과 욕구 알기, 자기성찰과 반성 등을 평화교육의 주요한 내용 및 효과로 짚어 냈다. 이와 더불어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평화로운 방식으로 유지되어야 함을 평화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했다. 더 나아가 사회 갈등 속 평화의 문제, 남북통일의 문제까지도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셋째,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일상 속에서의 안전한 공간을 평화교육의 주요한 기반으로 설정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정의된 평화교육 개념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평화의 다양한 의미들을 교육으로서 실현함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교육 실천가들은 편안한 일상 만들기나 자기 성찰을 통한 편안함 등을 추구하며 평화교육의 시작을 자신의 변화로부터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여러 차원의 문제 해결의 기반은 자기 자신의 반성과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평화교육 실천 현장에서 요청되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와 평화교육의 개념적 다의성은 실천가들의 생각이나 신념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으로 전달될 위험성이 있다. 향후 발생할 평화교육의 개념에 대한 갈등 예방을 위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실천가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러한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할 공간 또한 열려야 할 것이다. 즉, 평화교육에 대한 개념 및 의미에 대해 공론화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평화교육 실천을 통해 형성된 강한 민감성이 오히려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기에 평화의 실천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소한 일들에서도 폭력적 현상을 발견하게 되고,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 속 여러 상황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 존재하는 폭력적인 상황만을 인지하게 될 경우, 비난의 목소리만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해소와 해결이 평화교육의 더 큰 목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바, 동아리 활동·창의적 체험학습 등을 통해 방안 모색을 위한 활동들의 비중이 더욱 높아져야 할 것이다.
셋째, 평화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방어벽이 존재함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일회성 행사나 특강의 형식을 빌어 운영되는 평화교육은 지속적으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우 평화 감수성이 삶에서의 실천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지식적 측면에만 머물 가능이 있다. 또한 평화교육의 단순한 이론적 결과를 토대로 학생들의 삶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경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마음에 방어벽을 치는 교육 관리자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평화교육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므로, 평화교육 실천가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지속적으로 교육 실천에 관한 고민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
평화교육은 평화를 배우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 세계화 속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적 질서 속에서 국가, 지역 사회, 개인까지 다양한 구성체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이를 위해 삶으로서 실천하는 모습으로까지 나아가기를 지향하고 있다. 학문적 연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현장에서의 실천성을 강조하는 평화연구자들의 모습은 평화 연구 및 평화교육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정주진, 2015: 230-231)처럼, 실천가들의 평화교육적 성찰은 문서에 담겨 있는 평화교육의 개념적 정의를 초월하여 현장에서의 역동적 힘으로 발현되고 있다. 또한 짧은 시간 내에 드러나는 효과성에 주목하기 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적인 흐름 속에서 평화의 원리를 찾아나가려는 노력을 함께하고 있다. 평화가 요청되는 이 시대에 평화교육이 또 다른 삶의 에너지로 평화 문화 조성에 기여할 것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