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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주의와 세계주의

강성률 *
Kang Seong-Ryool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kasryool@hanmail.net
*Professor, Ethical Education, Gwangju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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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Oct 14, 2019; Revised: Nov 25, 2019; Accepted: Dec 25, 2019

Published Online: Dec 31, 2019

요약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상황은 과연 이 지구 안에서 영구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위기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전 인류의 상호 이해와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류애 사상이 형성된 배경과 그 핵심사상,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각국의 법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모든 인류가 국가의 경계, 민족적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상은 스토아학파 이전, 즉 고대의 키니코스학파에게서 이미 등장한 바 있다. 키니코스학파에서는 국가를 어느 특정 범주에 제한하지 않고 우주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가 생각하는 현자란 협소한 정치공동체로부터 벗어난 세계시민이었다. 키니코스학파 학자들처럼 스토아사상가들도 가족, 신분, 국적과 같은 인습적인 차별을 초월한 인류 통일체 사상을 정립하였다. 스토아학자들이 자신들의 철학을 정초하는데 있어서 차용해온 가장 근원적인 뿌리는 인간, 사회가 아니라 자연, 세계, 우주였다. 파나에티우스는 자비, 관후와 아량과 같은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덕을 강조했다. 특히 후기 스토아주의 학자들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도와야 하는 인간의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로마법은 노예에게나 자유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그리고 부유한 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었다. 그리고 그 로마법의 밑바탕에는 스토아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토아학파는 로마의 자연법사상을 불러 일으켰다. 자연법이란 실정법의 모태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 평등, 생명권 등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영원한 법을 말한다. 자연법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다. 이후 존엄 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현실적인 법 조항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인간 존엄의 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인권보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으로 법제화되기 시작했다. 영토분쟁과 종교 갈등, 외국인 혐오 및 차별, 난민문제 등은 세계주의의 정신으로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제 세계주의는 인류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이자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지향해가야 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역시 외국인이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 주체임을 인정하고 있다. 모든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며, 그 기본적인 권리는 어떤 경우도 불가침이어야 한다.

Abstract

Considering various risks that the human race faces with, it raises a question on whether the human race can enjoy the permanent peace on Earth. In order to resolve such crisis and step forward to the better future, mutual understanding and contribution of all human beings, transcending the boundaries of nations and races, are essential. Therefore, it might be important to take a closer look into the background for formation of the concept and basic philosophy of humanity and how it has been reflected on today’s laws. The reason that Stoicism could be accommodated in Rome was due to the free and open mind of the Romans. However, the idea that all human beings should have humanity beyond the boundaries of nations and races was already emerged by the ancient Cynicism, before Stoicism. The Cynics believed that the nation should not be something universal, not bounded by any specific boundary. For the Cynics, including Diogenes, wise men are global citizens with no strings attached to political communities. Just like the Cynics, the Stoics established the idea of human unity that transcends traditional and conventional discriminations such as family, social status, or nationality. The Stoics claim, “Reasoning is the basic human nature, so living according to reason is virtue and virtue is sufficient for happiness.” For the Stoics, their philosophies found root in nature, world, and universe rather than humans and societies. Crucifoss defined ‘Virtue is to help others’. Panaetius rejected the ideal of apathy and emphasized more positive virtues such as mercy, condolence, and generosity. Especially, the latter-day Stoics consistently stressed the importance of moral and political obligations of human beings, to serve and help others. Roman law was equally applied to slaves and free men, Greeks and barbarians,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Stoicism was lied on its foundation. Above all, Stoicism arose the idea of natural law in Roman law. Natural law forms positive law, and it refers to eternal law that must be universally maintained regardless of age or nation, such as basic human rights, freedom, equality, and right to life. The concepts that are indispensable in natural law are human dignity and human rights. Dignity has emerged as an actual provision through the 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1776 and the French Revolution of 1789. The spirit of human dignity began to be legislated after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t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after World War II, due to an increase in the interest and commitment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Territorial disputes, religious conflicts, xenophobia and discrimination, and refugee issues can be largely resolved with the spirit of Cosmopolitanism. Now, Cosmopolitanism should be a goal of the human race that must be achieved. In the constitution of Korea, it is fully recognized that foreigners also are the persons having the same rights as the citizens of Korea. Therefore, discrimination of any kind must be prohibited and the basic rights of humans must not be violated in any case.

Keywords: 키니코스학파; 스토아주의; 세계주의; 인류애; 자연법
Keywords: Cynicism; Stoicism; Cosmopolitanism; Humanity; Natural Law

Ⅰ. 서 론

오늘날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로 대표되는 국제 무역질서의 파괴, 세계 곳곳의 영토분쟁과 종교 갈등, 외국인 혐오, 총기사고와 테러, 난민문제 등은 과연 이 지구 안에서 온 인류가 영구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밖에도 전 지구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로부터 인류가 생존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전 인류의 상호 이해와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물론 모든 인류가 국가 및 민족적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런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는 걸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류애 사상이 형성된 배경과 그 핵심사상,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각국의 법에 어떻게 구연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인류애 사상은 서양 고대의 키니코스학파에게서 나타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스토아학파에서 그 사상이 만개하였던 바, 이에 따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을 갖는다는 보편성으로부터 국가적 제한과 민족적 편견을 부수고 인류적인 정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키니코스학파의 사상을 계승한 스토아학파의 핵심 주장과 그것이 이후 세계주의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1. 스토아주의의 등장배경

스토아주의는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게 되었는가? 고대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한 이후 폴리스 형태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 편입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터니즘 적인 세계였다. 영토의 확장에 후속한 낯설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들과의 조우는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사고의 지평선을 무한하게 확장되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영토 가운데 작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자신들의 모습을 직시하도록 하였다. 지난날에는 도시국가(polis) 사이의 전통적 관습과 문화, 사상들로부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와 사상이 요청된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인들에게 강력한 신흥세력으로 떠오른 로마제국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심리적 공황상태 하에서 그리스인들의 선택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그런 변화에 항거하다가 분사(憤死)하든지, 그 변화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지든지, 아니면 그 변화의 도도한 물결에 몸을 맡기든지. 그러나 항거하다가 자멸하거나 혹은 로마적인 것에 무력하게 굴복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두 번째 선택지, 다시 말해 가능한 한 로마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신의 내면세계로 침잠하는 쪽을 선택했다.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실에 참여하는 쪽보다는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자족(自足)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정치사회질서가 급변하는 혼란한 상황에서는 공적(公的) 영역의 삶에 투신해 자신을 위험상황에 노출시키는 것보다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는 것, 즉 참여보다는 자족(自足)이 인간 행태의 적절한 모습이 되기 쉬었다”(백승현, 2015:85).

이것이 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학파들의 공통된 특징이었거니와 이 무렵 가장 영향력이 컸던 학파는 키니코스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였다. 이들 세 학파는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자족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려 했다. 따라서 대부분 ‘현실 도피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인류와의 소통 및 교류’와 관련하여 가장 긍정적인 성향의 학파를 꼽으라면 스토아주의를 들 수 있다. “스토아학파는 다른 두 학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보편적 관점’을 갖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은 특기할만하다 하겠다”(백승현, 2015:90). 다시 말해, 스토아학파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의 법과 하나의 주권 아래, 하나의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스토아주의가 어떻게 로마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 스토아주의는 로마제국의 주변 도시국가와 종족 세력들을 복속시켜 단일 정치사회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토아주의가 키니코스학파의 영향을 받아 견고한 성품과 자유롭고 (세계) 개방적인 정신을 높이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토아주의는 복속을 당한 종족의 상층부를 로마 원로원 의원 혹은 자유 시민으로 받아들여 로마를 개방사회로 전개해나갔던 로마인들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신과 성향에 ‘정치적으로’ 부합하였던 것이다. 또한 로마인들은 대부분 국법을 준수하고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러한 기풍은 그들로 하여금 개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훌륭한 덕을 준행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스토아주의는 로마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기준으로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반면, 개인의 쾌락을 중시한 에피쿠로스주의는 로마인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백승현, 2015:93).

또한 우리가 스토아주의와 세계주의의 관계와 관련하여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 가운데 하나는 종교 분야이다. 스토아학파는 당시 여러 모양으로 숭배되고 있던 다양한 전통종교들의 신적 존재들을 단일한 신적 권능의 표현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스토아주의자들의 관점은 일원론(一元論)이면서 한편으로 범신론(汎神論)과 다신론(多神論)을 수용하는 특이한 관점으로서, 다양한 종교의 관행을 허용하였다. 결국 스토아주의는 로마의 토속신앙을 포함한 여러 지역들의 신앙들을 범세계적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그리하여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종교로 보편화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스토아주의와 키니코스 사상

그러나 모든 인류가 국가의 경계, 민족적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상은 (서론에서 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키니코스학파에게서 이미 등장한 바 있다. 키니코스학자들은 도시국가의 이상을 비난하고 포기했다. 이 때문에 키니코스학자들은 희랍세계의 도덕률을 반대한 이른바 ‘도덕 폐기론자들’로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이들은 도시국가뿐만 아니라 재산, 신분, 성, 가족, 국적 그리고 자유민과 노예의 구별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적 인습적인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였다. “그들 가운데 특히 디오게네스는 자신은 세계시민이며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이상세계의 개인임을 강조한다. 물론 키니코스학자들이 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자들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스토아주의에 나타난 평등의 이념과 세계시민 사상의 길을 준비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조남진, 1994:40).

디오게네스를 비롯한 초기 키니코스 학자들은 폴리스를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당시 희랍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치 사회적 가치들을 부정하면서 폴리스를 잘못된 국가라고 불렀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돈을 폐지하도록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디오게네스는 여전히 폴리스를 떠나지 않고 공중목욕탕이나 신전에서 자기도 했다. “디오게네스가 법정이나 체육관, 신전 등의 폐지를 주장했다는 명백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오유석, 2013:76). 이에 대해, 모든 인류가 하나라는 의식을 가진 키니코스학파 학자들이 보다 많은 구성원들을 세계시민적 공동체에 편입시키기 위해 폴리스를 떠나지 않았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반면 당장 유용한 것까지 페기하지 않는 견유철학자들의 자세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서 디오게네스가 제시한 ‘이상 국가’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디오게네스를 비롯한 키니코스학파는 이상 국가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덕’이 시민성을 규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출생신분이나 환경, 재물, 명성이 아니라 오직 덕에 근거하여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둘째, 키니코스학파에서는‘국가’를 어느 특정범주에 제한하지 않고 ‘우주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키니코스학파는 전통적인 법이나 기존의 사회적 관습 등을 무시함으로써 특정한 ‘폴리스’의 범주를 탈피하고자 했다. 셋째, 키니코스학파가 생각하는 국가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위에 성립하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처자가 공유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플라톤이 어린이들을 특정한 가문의 일원이 아니라 충실한 시민으로 양육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반면, 디오게네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처자공유론’을 주장하였다. 넷째, “키니코스학파는 자연에 반하지 않는 모든 풍습, 가령 식인행위나 근친상간행위까지도 용인했다”(오유석, 2013:75). 이렇게 보았을 때, 키니코스학파가 생각하는 현자란 정치공동체로부터 벗어난 세계시민(cosmopolites)이었다.

그렇다면, 키니코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키니코스학파 학자들이 도시국가에 대해 냉담했던 것처럼 스토아사상가들도 가족, 신분, 국적과 같은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차별을 넘어 인류 통일체 사상을 고전 고대의 윤리적, 목적론적 개념과 키니코스학파의 현자의 평등이념 그리고 초기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의 개념과 관련시켰을 것이다. 스토아사상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신과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유니크한 관계를 가지나 동물은 선천적으로 자기보존의 본능만이 있기 때문에 신과 합리적인 관계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토아사상가들에 있어 자연법은 인간본성과 세계법에 기초하는 보편타당한 합리적인 법인 것이다”(조남진, 1994:50).

이 부분에서 스토아학자인 에픽테토스는 키니코스학파를 스토아학파와 조화시키려 하였다. 혹자는 키니코스학파의 세계주의를 인류의 자연적 동일성에 근거한 도덕적 세계시민주의로 해석하기도 했다. “키니코스학파의 세계시민주의를 온화한 도덕적 세계시민주의로 간주함으로써 스토아의 세계시민주의와 양립 가능하도록 해석했던 것이다”(오유석, 2013:79). 세계시민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자신의 동포로 여긴다.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어야 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착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해주어야 한다.

요약컨대, 초기 키니코스학파의 세계주의는 기존의 관습이나 사회적 질서를 거부하고 자연적 본성에 따르려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의 키니코스철학자들은 점점 정치 사회적 참여를 받아들였고, 자신들의 철학을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변화시키려 하였다. 다만 키니코스학자들이 추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행복일 뿐, 공동체의 발전은 아니었다. 세계시민주의가 전 세계적인 범위로 확장된 것은 스토아학자들에 의해서부터이다.

3. 스토아주의의 핵심내용

그렇다면, 스토아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원래 스토아주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주의에 대한 반동 혹은 비판적 태도로부터 등장하였다.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간주하는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하여 “참된 행복이란 쾌락에서가 아니라, 의무를 준수하고 또한 극기하고 단념하는 데서 생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스토아학자들이다. 인간에게 길을 제시해주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자연 질서를 지배하는 객관적인 이법(理法)이다. 이 대목에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에피쿠로스학파와 객관적이고 공동체적인 스토아학파의 길이 갈린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자기의 본성인 이성에 좇아 사는 자가 덕 있는 사람이 된다.

때문에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대로 인간의 본성은 이성1)때문에 이성에 좇아 사는 것이 덕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덕과 부덕의 구별은 단순히 인간의 외형적인 행위에 있다기보다도 그의 정신적 태도에 달려 있다. “덕은 외부적 행동을 바르게 수행하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삶에 대해 바른 태도를 갖는 것으로 이뤄진다”(백승현, 2015:90). 그리하여 건강이나 재산, 생명, 명예, 권력, 병, 빈곤 등은 선악의 구별이 없는 ‘중립적인 것(adiaphora)’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하여, 중기 스토아철학자 크뤼시포스는 자연에 일치해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들은 인간에게 신적인 지성 혹은 합리성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는 물론 신들과도 태생적으로 한 핏줄이다. 한편, 자연에 일치해 산다는 것은 덕스럽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덕이란 자연에 일치하는 성향이기 때문이다”(오유석, 2013:84). 여기에서 덕은 자연(혹은 우주)의 본성과 일치하는 어떤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이렇게 보건대, 스토아학자들이 자신들의 철학을 정초하는데 있어서 차용해온 가장 근원적인 뿌리는 인간, 사회가 아니라 자연, 세계, 우주였다. 그러한 관점에 따라 그들은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사회의 조직 가운데 어떠한 것도 올바른 합리성에 의해 질서 지워진 것은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기존의 어떠한 공동체에도 폴리스라는 용어를 허용하지 않았다.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오히려 전체 우주야말로 올바른 이성에 의해 질서 지워진 곳이다. 우주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폴리스가 된다. “다시 말해, 스토아학파의 (코스모)폴리스는 전 우주를 포괄하는 개념이며, 여기에는 인간이나 동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지구, 별, 심지어 신들까지도 포함된다”(오유석, 2013:82).

스토아사상에 의하면, 외부사건으로부터 독립하고 격정을 지배하는 가운에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성립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결정돼 있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이성적 필연성과 협력하여, 무감동 또는 무관심의 상태(a state of apathy or indifference), 또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의미로 무정념(정념이 없는 상태, without passion, apathe)를 달성하려 노력할 것이다. 한마디로, 현명한 사람이란 장수(長壽), 음식, 부, 권력 같은 관습적 목표들에 대해 무관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인간은 쾌락이나 고통에 무관심해야 하며, 모든 정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백승현, 2015:89). 이러한 ‘무정념’의 교훈이 밖으로, 즉 타인을 향해 드러난 대목은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현명한 사람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정념이 없기 때문이다”(백승현, 2015:90).

나아가 크리시포스는 덕이란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우리는 왜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것은 타인을 우리 자신과 동일한 존재로 여기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하여 크리시포스는 가족과 친지로부터 시작해서 온 인류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시포스가 주장한 바처럼, 덕이란 단순히 ‘무정념’의 상태로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성취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파나에티우스는 무정념의 이상을 거부하고, 자비, 관후(寬厚)와 아량과 같은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덕을 강조했다. 이 기조에 따라, 그는 ‘사람은 모름지기 모든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초기 스토아주의의 교훈을 제거했다. 대신 자족보다는 공적 의무사항들을 완수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류의 단일성, 남자와 여자의 동등가치, 동료 인간에 대한 자선, 그리고 법 아래의 평등을 주장했던 것이다”(백승현, 2015:92). 모든 개인은 이성적 존재자 전체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서로 친척 관계에 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적(敵)에게도 친절할 의무가 있으며, 국가적 정의 이상으로 인류애를 실천해야 한다. “특히 후기 스토아주의 학자들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도와야 하는 인간의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백승현, 2015:87).

사실 초기 스토아학파는 이상주의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었다. 즉, 현실세계와의 타협이 불가능하다 여겨질 만큼 그 교의상 완벽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완숙기(중기)의 스토아주의는 로마인들이 실제로 지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그 결과 상류층 사회에 비교적 널리 퍼질 수 있었지 않은가 여겨진다. “완숙기의 스토아주의는 실천적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준용하는 관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교의체계로 축약될 수 있을 만큼 로마인들 상류층 사이에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백승현, 2015:86). 바로 이러한 점이 로마인들로 하여금 스토아 사상을 수용하게 만든 요인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후기 스토아주의는 또 다시 각자의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형태로 변모해갔다. 예컨대, 에픽테투스와 아우렐리우스 같은 경우 거의 개인적 윤리에 관한 탐구에 몰두하였다.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각 개인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다시 말해 내면으로의 침잠(沈潛)에 주목했다. 본래 스토아주의자들은 우리들의 삶이 로고스(logos)에 의해 인도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로고스는 세계이성, 우주정신, 신, 섭리, 운명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 삶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마음)에 대해 통달하려 했다”(백승현, 2015:96).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스토아주의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세계이성, 로고스에 조화시키는 사람에게 마음의 평정심이 찾아오며, 그러할 때 그런 사유가 또한 좌절과 분노를 감소시킨다고 여겼다.

4. 스토아주의와 자연법사상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본성적으로 정치적인 동물들인 인간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알려준다. 따라서 법은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만약 모든 인간을 (어떤 차별도 없이)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면, 그러한 정신이 법에서부터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한 곳이 바로 로마법이다. 즉, 로마법은 노예에게나 자유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그리고 부유한 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똑같이 동등하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로마법의 밑바탕에는 스토아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법과 관련해서도 “서양의 모든 영토를 지배한 로마제국에게 스토아학파의 학설은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백승현, 2015:91).

로마의 키케로는 자신의 법철학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스토아학파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것처럼 스토아에 따르면, 신과 우주세계의 근본법칙인 이성(logos) 그리고 자연(Physis)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하나였다. 이를 인용하여 “키케로는 진정한 법은 자연에서 유래하는 올바른 이성과 일치하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체로서 정의로운 자연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는 자연법을 ‘신법’이자 ‘이성의 법’이자 ‘정의의 법’이라고도 표현하며, 모든 실정법은 이 신성하고 영원한 자연법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서영식, 2014:359).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 우주세계의 보편적인 이성, 즉 자연의 본성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를 신과 공유, 즉 나누어가짐으로써 신들과 우주적 차원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법의 근거가 되는 자연은 더 이상 어떤 밖의 세계 혹은 밖에 존재하는 외재적(外在的)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가운데 최고의 단계인 이성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누구든지 진실한 인간이 되고자 한다면 이성능력에 근거한,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연의 법칙을 존중해야 한다. 결국 자연법을 준수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신과 자연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성능력을 통해 근거 지워진 규범을 따름으로써 스스로 자율적인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그 자유의 자율로 인하여 신성한 도덕법칙의 주체이며, 이성은 당위를 통하여 행위가 사물의 질서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 질서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강성률, 1990:4).

스토아에 따르면, 우주적인 자연 질서에 의하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인과 야만인으로 불린 이민족들 혹은 주인과 노예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주장되었던 신분상의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은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박애주의를 지향하는 이성적 세계국가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서영식, 2014:361).

그렇다면, 고대 희랍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법사상의 중심에 서있는 자연법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에 대한 이해는 그 시기별로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고대에서 자연법은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였으며, 중세에 있어서는 신이 창조한 우주만물에 대한 질서로,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인간의 이성 중심으로 주로 설명하고 있다”(차수봉, 2016:6).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토아학파와 자연법사상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앞에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사상을 불러 일으켰다. 자연법이란 실정법2)의 모태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 평등, 생명권 등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영원한 법을 말한다. 이 자연법사상은 키케로를 통하여 로마법에 흘러들었다. 노예나 부인, 미성년자를 차별하는 법률이었던 로마법에 스토아 사상을 가진 황제들이 자연법사상을 도입함으로써 만민법3)의 기초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로마 자연법사상의 기원은 로마가 아닌 외국에서 유입된 희랍철학, 특히 스토아사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스토아사상은 로마 공화정 말기 부유한 계층들 사이에서 만연했던 절충주의의 대표자 키케로의 자연법사상에 영향을 주었다”(조남진, 1994:48). 키케로는 법이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을 영원히 세계에 적용한 것이라 보았다. 법이란 인간의 같은 본성에 기초하여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세계적이며, 신의 절대권에 의해 양도받은 영원하고도 불변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법을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신수설(神授說)은 로마 법학자들의 자연법에 적용되었다”(조남진, 1994:48).

자연법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다. 그런데 ‘존엄’ 사상은 로마에서 스토아학파가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에 철학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역시 키케로는 그의 인권사상 속에 ‘존엄’의 내용을 확장해 나갔으며, 그 결실로써 자유와 평등과 같은 가치가 강조되었다. 그 바탕은 말할 것도 없이 스토아사상이다. “스토아 철학은 자연법사상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조는 오늘날의 헌법 정신에 나타난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와 같은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로 구현되었다”(차수봉, 2016:5).

또한 이후 스토아학파의 인권사상은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독교 사상의 존엄사상은 더욱 실제적인 교리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중세 기독교는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고, 따라서 인간은 그 창조주와 닮아있다”는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과 신이 닮아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되어 인격과 자유, 평등이 보장되어야 했다. “절대자와 그가 만든 세상, 그리고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의 세계 속에서 도덕적 일체성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계급이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윤리적 존엄으로 인정되었다”(차수봉, 2016:6).

그렇다면, 스토아사상의 영향을 받은 로마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첫째, 자연법, 인도주의, 그리고 평등주의와 같은 원리들이다. 둘째, 여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예와 같이 법적으로 타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사람이나 신분적으로 낮은 자들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런데 신분이 낮은 자들의 지위를 높여주고 아울러 그들이 섬기는 자들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부여한 법령들은 대부분 스토아사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스토아사상은 군주 국가들에 의해 제정된 법을 능가하는, 합리적 원리에 기초한 국제법 사상, 그리고 개인을 시민법보다 우위에 두는 근대 자연법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조남진, 1994:25).

이후 존엄 사상은 1776년의 미국의 독립선언과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현실적인 법 조항으로 등장하였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다 … ” 여기에서의 평등, 생명과 자유, 행복의 추구와 같은 사상은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사상적 가치를 인류공동의 유산으로 만들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나라 헌법 제10 조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존엄’과 ‘인권’ 개념을 확대하여 적용하면, 노예제와 대량학살, 테러, 인종차별, 인신매매, 생명의 침해, 박해, 추방 등의 행위는 모두 이에 위반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존엄의 이 정신은 어떻게 특정 국가나 개별적인 민족을 초월하여 전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했을까? 이 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획득함으로써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1948년 12월 18일 국제연합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인권보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으로 법제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에서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고 되어 있다. 제2조에서는 “모든 사람에게는.... 모든 유형의 차별로부터 벗어나서,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3조에는 “모든 사람에게는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제4조에는 “어느 누구도 노예상태로 예속된 삶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제5조 “누구든지 고문을 당하거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처우 또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인류 역사상 나타났던 인권의 억압사례 들을 거론하면서 “절대적 금지명령”으로 묶어놓음으로써 특정 국가나 사회, 집단, 개인에 의한 인권침해를 금지하도록 선언한 것이다.

Ⅱ. 결 어

서론에서 제기했던 영토분쟁과 종교 갈등, 외국인 혐오 및 차별, 난민문제 등은 이 세계주의 정신으로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러한 정신은 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세계 인권 선언』이나 최근 개별 국가들이 시도하는 외국인 혐오범죄에 대한 금지규범들 속에 구현되어 있다. 작금에 들어 유럽연합의 공동헌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바, 이 과정에서 다시 주목을 받는 사람은 칸트(I. Kant)이다. 칸트는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실현범위는 하나의 국경에 머물지 않으며, 공화국 시민의 권리는 세계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작용된다.”는 생각을 구체화한 사람이다(신동일, 2010:283). 각 나라 안에서 적용되는 원리는 다른 나라에로 확장되어야 하고, 그리함으로써 종국적으로 영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위기의식을 절감하는 이때 세계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인류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이자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지향해가야 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세계 인권 선언』은 그 전문에서 이러한 내용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모든) 회원국들은 국제연합과 협력하여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 존중과 준수를 증진할 것을 스스로 서약하였으며,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이 서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므로, 이에, 국제연합총회는 모든 개인과 사회 각 기관이 이 선언을 항상 유념하면서 학습 및 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인 점진적 조치를 통하여 회원국 국민들 자신과 그 관할 영토의 국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권리와 자유가 보편적이고 효과적으로 인식되고 준수되도록 노력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국가가 성취하여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서 이『세계 인권 선언』을 선포한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라고 하여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 주체임을 인정하고 있다. 외국인은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상의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별은 금지되며, 그 기본적인 권리는 어떤 경우도 불가침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가적·민족적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상은 스토아학파로부터 키니코스학파에로, 그리고 수 세기를 지나 세계 각국의 헌법에까지 구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이 더 넓게, 더 깊게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책무라 사료된다.

Notes

1) 이성: 스토아학파는 자연(nature)과의 일치를 강조하는데, 보통 사물의 자연이라고 불리는 그 자연은 곧 이성을 의미하다. 그리스어 logos의 번역어로서 이성은 라틴어로 ratio로 불린다(백승현, 2015, 41(3), 90. 재인용). 또한 주지하다시피, 자연(nature)이란 본성(nature)이라는 다른 뜻도 가지고 있다(필자 주).

2) 실정법(實定法): 사회에 현실로 행하여지고 있는 법. 역사와 더불어 변천하고 국가 또는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3) 만민법(萬民法): 로마 시민 외에 로마 시민권이 없는 외지인에게도 적용한 법률. 보편성, 공통성의 개념을 중개로 하여 자연법의 개념과 결합하였다.

참고문헌

1.

강성률(1990). 칸트철학에서의 인간의 자유에 관한 연구. 전북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

백승현(2015). 기독교와의 관련성에서 본 스토아주의의 이해. 사회과학연구, 41(3), 83-103.

3.

서영식(2014). 키케로의 국가론과 자연법사상에 관한 고찰. 동서철학연구, 73, 349-371.

4.

신동일(2010). 외국인, 외국인범죄, 그리고 합리적 형사정책. 형사정책연구, 21(4), 275-300.

5.

조남진(1994). 스토아사상과 로마법. 서양고대사연구, 2, 23-78.

6.

오유석(2013). 세계시민주의의 기원과 의미-헬레니즘 세계시민주의를 중심으로. 도덕윤리과교육, 41, 73-95.

7.

차수봉(2016). 인간존엄의 법사상적 고찰. 법학연구, 16(2),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