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 20주년 회고사

한국인을 위한 세계시민교육

한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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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hanthr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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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line: Dec 31, 2019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가 2000년 6월 16일 창립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이제 우리나이로는 20세, 만19세를 넘겼으나 사람으로 본다면 어엿한 성인이다. 지난날의 성취를 돌아보고 내일을 바라보는 이번 뜻깊은 제20차 국제학술대회의 기조강연을 할 것을 요청받아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다.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는 유네스코가 국제이해교육(EIU)을 새로운 글로벌 교육 의제로 설정하고(1995-2004) 한창 추진하던 2000년에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과 같이 출범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는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을, 그리고 2015년부터 2030년까지 세계시민교육(GCED)을 모두가 달성해야 할 교육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교육 의제와 패러다임과 키워드가 계속 변화하면서 자칫 혼란을 느낄 수도 있으나, 이러한 변화는 인권과 평화, 문화 간 이해, 세계화, 그리고 지속가능발전 등 보편적 핵심 가치의 개념이 확대되고 상호 접근하고 더욱 풍부해지고 있는 것, 즉 국제이해교육의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당혹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서구에서 들어온 수입품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나 인권보다도 더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는 서로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있고 한국의 경제는 대외의존도도 높아서 세계의 어느 곳에서 일어난 일이건 우리의 삶에 다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세계 또한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하며 현대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시민이란 여전히 낯설고 또한 이에 대한 오해도 많다.

세계시민은 인권과 민주주의 못지않게 우리의 생활과 미래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민족과 국가를 강조하는 교육과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한국인들에게 세계시민이란 여전히 머리로도 납득하기 어렵고 가슴에 와 닿는 개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세계시민교육의 이념과 가치와 내용을 교육하고 그 정착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전통 속의 세계시민 의식의 연원에 해당하는 것을 찾는 작업도 중요하다. 한국인을 위한 세계시민교육은 결코 한국적 민주주의를 찾자는 유신 정권 시절의 시도처럼 한국 상황의 특수성에 적합하도록 세계시민교육의 보편적 가치를 취사선택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시민교육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가 한국의 역사라는 특수한 상황과 한계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누구의 공감을 받거나 저항에 직면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확대되고 내용을 풍부히 하며 사회발전에 기여했는지, 또는 왜곡되거나 악용되거나 좌절되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성찰함으로써 낯설게 느껴지는 세계시민교육을 우리의 문제와 연결시켜서 우리의 문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약소국이라는 인식을 갖기 쉬우나 곰곰 생각해보면 상당한 규모와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가진 나라이다. 유럽에 갖다 놓으면 단연 열강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크기이다. 한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사상과 실천을 배태하고 발전시켜왔으므로 잘 찾아본다면 근대 세계시민주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그 맹아에 해당하는 것들을 발견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교나 불교에서 또는 보다 토착적인 사상과 믿음 속에서 세계시민적인 요소를 찾아보는 작업은 한국의 세계시민교육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근대 이후 유교에서 세계시민주의를 비롯하여 민주주의나 평화나 인권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중화문명의 회복을 추구하고 있는 현대 중국에서 특히 더 활기를 띠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자칫 문화패권주의의 혐의가 의심되기는 하지만 상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위 유교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필요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도쿠가와 시대의 상황에 맞게 해석된 유교를 활용했고 이러한 근대화된 유교는 근대 일본의 사상과 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도 근대화된 유교는 여러 다른 목적에서 도입되어 활용되었고 해방 이후 경제성장 과정에서 근대화된 유교는 중요한 기여를 하면서 동시에 많은 부작용도 초래했다. 근대 이전의 유교와 함께 근대화된 유교에 대한 비판적 검토 또한 한반도 세계시민 담론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세계시민교육이 지향하는 핵심적 가치들 외에 시민(citizen) 또는 시민성(citizenship)이라는 개념, 그리고 세계 또는 지구적(global)이라는 개념들이 한국의 사상가들의 사유 과정 속에서 또한 한국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등장하고 개념화되고 소비되거나 오해되어왔는가를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시민이나 세계라는 표현이 갖고 있는 낯선 어감이나 미묘한 차이(nuance)에도 주목해야 한다. 다만, 유교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 속에서 세계시민성을 찾는 작업은 ‘텍스트’를 읽는 가운데 당대의 상황이라는 ‘콘텍스트’를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 근대적 의미를 고대의 한자와 표현에 투사하는 낭만적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 사상과 생활 속에서 세계시민성의 기원과 맹아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세계시민의 사상과 제도와 사회문화적 기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확대하는 일은 매우 의미가 크고 필요한 작업이다. 우리가 흔히 서구의 문제, 또는 머나먼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모습과 규모와 초점이 다를 뿐 상당수는 우리가 고민했던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계시민교육의 낯설음은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