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며 패권을 쥐었던 영국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제를 걸고 제국의 위엄을 내세운 나라이다. 서양 근·현대사에서 정복과 지배를 통해서, 세계를 향해서 ‘위대한 대영 제국은 전 세계로 확장한다’는 초국경적 경계 넘기를 해왔던 특유의 코스모폴리탄 정신을 잉태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랬던 영국이 2016년 6월 23일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자발적으로 선택하였다. 이른바 영국의 EU 탈퇴로 축약되는 ‘브렉시트’(Brexit) 결정이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안문석, 2016; 고정애, 2016). 영국의 EU 탈퇴는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에 이루어졌다. 브렉시트 절차를 밟기 위해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2017년 3월 28일에 EU 탈퇴를 선언하는 서한에 서명을 하고 유럽연합과의 ‘이혼’ 절차를 밟고 있으며, 2019년 3월 29일 밤 11시에 발동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8년 현재 지금도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시민 사회 단체를 통해서, 또 비형식적 모임을 통해서 ‘브렉시트 결정을 다시 물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BBC, 2018년 6월 5일자). 최근에는 브렉시트의 추진 입장을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완전한 탈퇴를 주장하는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와 유럽연합 탈퇴 이후에도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남아야 한다는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로 나눠지고 있을 만큼, 브렉시트 결정 이후에도 추진과정에서는 서로 상이한 입장이 전개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 과정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유럽에서의 영국의 정체성, 이민을 둘러싼 논쟁, 영국 내 거주하고 있는 유럽인들의 안전보장과 거주, 일자리, 교육, 보건의료 등 많은 부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누구도 명확하게 예측하거나 영향력을 측정할 수 없기에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들은 ‘Still in the Dark(여전히 암흑기)’이라고 표현하면서 브렉시트의 향방에 대해서 불안과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2017년 12월 8일자).
분명한 것은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들에게는 시민교육의 생생한 ‘삶의 경험이자 내용’이 된다는 점이다(김진희, 2018). 심성보(2016) 는 브렉시트로 인해서 영국인들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 즉 이민족의 다양한 문화와 어울려 사는 ‘영국다움(Britishness)’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근원적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대장정의 문을 열었던 영국의 세계시민정신(cosmopolitanism)의 쇠퇴는 브렉시트 시대에 선명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서영표, 2016).
특히 세계시민사회 단체의 리더 역할을 하며 ‘세계시민교육을 위한 교사 가이드라인’(guideline for global citizenship)을 개발한 글로벌시민단체 옥스팜(OXFAM)을 잉태했던 영국 사회는 자국 중심의 국민국가 시대의 시민교육으로 회귀할 우려를 가지고 있다(Hoskins, 2016). 그렇다면 브렉시트는 세계시민교육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분석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경의 개방적 문을 봉쇄하고 국가중심의 블록화를 추진하는 브렉시트는 세계시민교육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그리고 이것이 세계시민교육의 발전과 제약에 미치는 관계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 세계시민교육 담론이 제약을 받는 맥락과 현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나아가 영국사례가 세계시민교육 실천 과정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고찰하고자 한다.
Ⅱ. 세계시민교육과 브렉시트의 관계성 논의
세계 간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과 상호연계성(inter-connection) 상호 의존성과 연계성이 높아진 글로벌화의 영향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교육의 제 측면에서 정치·경제·사회·교육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미 우리의 소비행위, 경제행위, 문화행위 곳곳에서 엄연한 일상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김진희, 2017). 저 멀리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했다는 벌어졌다는 뉴스가 죽어있는 교과서 같은 텍스트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시리아 난민 출신 어린이가 전라남도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지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는 생생한 시민교육의 현장이 된다. 예맨 내전으로 전쟁을 피해서 디아스포라 형태로 세계에 흩어진 예맨 난민 중 일부인 520여명이 제주도에 무비자 형태로 입국하면서 지역사회의 반발과 갈등이 확장되고 있다. 또 환경 재앙이 덮친 일본의 쓰나미(tsunami) 사태로 인해서 일본의 방사선 오염수가 유출되자 대한민국의 식탁에 일본산 수산물이 올라오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 발효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권·평화·환경·문화다양성 등 다양한 이슈는 확장성을 가지며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시민교육의 주요 콘텐츠가 된다. 점차 글로벌 문제를 고민하면서 한 국가의 나라의 ‘시민’은 국민국가의경계라는 ‘컨테이너’에서 벗어나서 확장적으로 넓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시민교육을 필요로 하는 목소리는 이론적 지점에서 세계시민교육의 발현을 구성하는 사상적·실천적 토대가 된 것이다.
각 국가나라마다 시민교육이 담지하는 철학, 내용, 지향성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제는 하나의 주권국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계층적, 문화적, 인종적 갈등과 공존 문제가 일국(一國) 내에서 발생하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새롭게 조명되고 국내와 국외의 이슈는 끊임없이 교차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아울러 정치사회적으로 복잡다단하게 얽힌 전쟁, 테러, 난민 이슈부터 환경, 음식, 여행 등 소소한 일상의 영역까지, 국가를 넘어서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지구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힘 있는 강대국과 소수의 엘리트 시민의 능력과 힘으로 풀 수 없는 시대이며, 전 지구적인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원리가 세계시민교육으로 개념화된다.
학술적인 맥락에서 ‘세계적(world)’, ‘지구적(global)’, 그리고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교육은 언제나 일관성 있게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며, 합의된 개념틀로 정립되지 않았다. 세계시민성이 가지는 내포한 거시성과 다층성, 그리고 모호성으로 인해서 교육현장에서 일관적인 원리와 체계성을 가지고 체계를 갖고 다루지 못했다(김진희, 2017: 63).
이처럼 비록 이론적으로 세계시민교육을 논하는 지형은 폭넓고 모호하지만 그 핵심은 세계인이 하나의 지구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갖고 세계의 체제를 비판적으로‘이해’하며 국제 이슈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시민교육은 보편적 인류 공영을 추구하는 가치지향적 교육이자 사회적 실천을 도모하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지구촌 전체가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있는 빈곤·인권·평화·환경·형평성의 문제에 공동체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김진희, 허영식, 2013).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세계에서 국경을 넘는 인간의 이동성 증대는 도덕과 윤리 이슈를 넘어서 개인과 집단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버넌스의 유·무형의 탈경계성이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세계시민성은 이렇게 포괄적인 사회 구성의 변화와 맞물린다. 바꾸어 말하면 세계시민교육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국가 범위를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인류의 공영을 모색하고, 보편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존중하자는 논의로 이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은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측면을 수렴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프레임으로 교육을 실천하는가에 따라 그 내용과 방법,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화의 가속화로가 빨라지면서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상이한 다른 개인과 집단, 문화와의 공존과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를 고민하는 세계시민교육은, 이론적으로 국제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인류를 향한 연대감을 기조로 하는 정신(ethos)을 기저에 밑바탕에 깔고 있다(김진희 외, 2014). 그렇지만 세계시민교육에서 누가 ‘힘(power)’을 가지고 교육의 내용을 선정하고, 주도하며, 어떤 이념과 헤게모니로 인류의 공존과 발전을 모색하는가라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그 실천 방향은 실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유럽시민성(european citizenship) 연구 혹은 세계시민성(global citizenship)을 분석하는 제 연구들은 하나의 국민국가 경계(border)를 넘어서, 범 세계적인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는 액션에 참여하는 책무성을 일관성있게 강조한다. 나아가 지역, 국가, 글로벌 차원의 다차원적인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지식, 태도, 기술, 가치를 키우는 교육을 강조한다(Hoskins et al, 2011). 그런 의미에서 특히 유럽의 세계시민성은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ship)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는 이론적 기반이다.
그런데 유럽연합을 주축으로 이처럼 적극적으로 주창되어 온 세계시민성은 2008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우파가 유럽 각국에서 세를 확장하면서 점차 반(反) 이민, 반(反) 다문화주의, 나아가 반(反) 유럽연합 기류(anti EU sentiment)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Hoskins(2016)은 이러한 기류가 점차 공감대를 확장하면서 그동안 유럽이 줄기차게 추진해온 이민정책이 역풍을 맞고, 영국, 프랑스, 독일 정치 수장들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을 이끌어내면서 결국에는 국민투표(The EU referendum in the UK)를 통해 영국의 브렉시트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개연성을 설명하였다. 즉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세계시민성은 국민 국가의 테두리 속에 발생하는 국내 이슈를 넘어서, 유럽과 전 세계의 이웃들이 타인들에게 미치는 개인적, 지역적, 국가적 관계와 영향력, 시민적 참여 행위의 상호연관성을 이해하는 시민을 강조하며 그런 시민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세계시민교육에서 핵심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갇혀버린 세계시민성 논의는 현실에서 더욱 이상주의적 담론으로 치부되면서 흔들리게 되었다. 심지어 유럽연합의 경제적 안전성과 정치외교적 리더십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일어나게 된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남유럽과 동유럽에서 서구 유럽으로 밀려오는 유럽 내 이주가 가속화되었고, 시리아, 이라크, 예맨, 리비아의 경제적· 정치적 이주는 유럽 전역의 연대의식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당초 초국가적 경계 넘기와 글로벌 마인드를 강조했던 세계시민교육의 취지는 현실적 난관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럽 내부에 살아가는 부유한 개인들조차도 시민들 간의 사회적 신뢰가 하락했고 공동체와 연대를 강조하는 세계시민 논의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게 되었다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서, 그동안 세계시민교육 이전에 글로벌교육(global education)을 추진해 온 영국에서는 유럽시민성을 영국민 스스로가 결속력있게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느슨하게 수용했기 때문에 브렉시트라는 탈(脫) 유럽적 시민성이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브렉시트에 대한 전망과 해석은 다양하지만 세계시민성과의 이념적 결별을 단행한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민교육의 판을 짜야하는 지각변동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로 인해서, 현재 영국의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학습은 공공 담론과 국가정책 아젠다에서 더 약화되고 중심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New Europeans net, 2017). 브렉시트 결정으로 영국은 다시 자국 중심의 ‘신-동화주의’ 정책으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안문석, 2016). 학계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민성’의 포기로 회귀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심성보, 2016).
특히 Bank(2017: 366)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유럽 정치의 새로운 헤게모니를 장악한 우파의 득세는 서구 사회가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다양성을 품은 열린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정치적 시험을 하는 논쟁적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브렉시트는 이념적으로 세계시민교육이 그동안 추구해온 인류 공동의 번영,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 지구촌에 대한 책무성과 배치되는 결정이며, 이론과 실제의 불협화음이 강화되는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연합 회원국 안에서도 시민교육은 이제 자국의 이해관계에 포커스를 맞추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도, 사회적 참여와 정의, 공동체를 강조하던 중심적 논의는 개인의 고용경쟁력 및 기업가정신(employability and entrepreneurship) 함양을 위한 논의로 초점을 이동하게 되었다(Audrey, 2016). 즉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시민교육 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함양하고 창조성과 혁신을 강조하는 논의로 방점이 옮겨지게 된 것이다. 또한 유럽의 시민교육은 무슬림과 이주민들의 관습과 사회 부적응, 문화적 정체성 유지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가르치고, 불확실한 경제위기 속에서 안보와 안전을 강조하는 시민의 대응과 역량을 강조하는 트렌드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유럽 연합 탈퇴를 결정한 영국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이 확정되자마자, 리즈대학교 교수인 Audrey(2016)는 “Citizenship education, social justice and brexit”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면서, 브렉시트로 인해서 직면한 시민교육의 위기와 사회정의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는 그동안 시민교육과 세계시민성 논의가 이상적인 관념과 이론의 틀에 갇혀 있었다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인해서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해졌다고 역설한다. 학생들이 세계가 얼마나 상호연결되어 있는지, 다양한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글로벌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로 이 시점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브렉시트가 결정된 단 1주일 동안, 외국임 혐오 범죄와 인종차별 사건 신고, 반 이민을 주장하는 플랜카드, 소셜미디어에서의 무슬림 비하와 조롱 건수가 400프로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기 때문에 시민교육은 이 같은 갈등으로 위태로운 시민사회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Audrey, 2016: 12).
Ⅲ. 브렉시트가 미친 사회적 영향과 세계시민교육의 위축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영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경제적,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52%가 유럽 연합 탈퇴에 표를 던지고, 48%가 잔류를 선택하였다. 이로써 국민투표 결과 영국의 브렉시트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브렉시트는 단순히 정치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국사회가 지역별, 성별, 교육수준별 차이 및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나 분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되었다(김진희, 2018; BBC, 2016). 즉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는 유럽연합과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는 비율이 높았지만, 스코틀랜드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존속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라는 거대 행정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과 런던을 비롯한 도시의 인식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자, 유럽연합에서 독일에 이은 경제적 파워를 갖춘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지 43년 만에 탈퇴를 결정한 것이고 유럽연합의 통합 아젠다에 역주행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정애, 2016: 194). 개방보다는 새로운 고립과 자국 우선주의를 택한 것이 브렉시트이며, 영국은 유럽과의 교역 및 잠재적인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이민을 통제하고 자국의 정치외교적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선택을 했다. 특히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표가 가장 많았던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도시 런던은 세계화의 수혜자였지만 진정한 영국은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런던의 젊은 청년들은 유럽 친구가 없는 이가 드물 정도로 유럽 연합의 통합적 정신이 도시를 지배하지만 지방의 인식은 다르다. 고정애(2016: 195)는 다음과 같이, 브렉시트 현장의 분위기를 보도하였다.
지방은 달랐다. 여전히 미묘하게 작동하는 공동체 정서가 작동하는 곳이다. 동네 펍에선 예의바르지만 이방인을 경계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곳 젊은이들에겐 영국인이 아닌 친구가 있을 가능성은 낮다. 이들에게 세계화는 그저 길거리에서 낯선 간판을 보게 되고,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이들과 접하게 되는 걸 의미할 수 있었다. 중도에 학교를 관둔 젊은 백인 남성들에겐 일자리를 빼앗기는 일이기도 했다. 잉글랜드 중부 보스턴이 대표적이다. ‘리틀폴란드’로 불릴 정도로 동유럽 이민자가 몰려 10년 사이 인구가 네 배로 불어난 지역이다. 이곳에서 탈퇴의견은 75.6%에 달했다.
이미 일상의 경제.문화.소비 활동에서 탈국가적 시민으로 살아가는 영국의 중산층과 젊은 세대, 학력 수준이 높은 시민들은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격앙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세계의 금융 자본과 문화의 중심’이라 일컫는 수도 런던에서 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반대 운동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벌어졌다. 런던 시민들은 ‘I am European’, ‘Stay with EU’(나는 유럽인이다. 영국은 유럽 연합 회원국으로 남아있어야 한다)와 같은 피켓을 들고-의회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하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도 할지라도-시민들은 그 결정이 주는 가져올 파장을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행동함으로써 시민교육 현장에 참여한 것이다. 실제로 브렉시트 반대표를 많이 던진 런던에서는 시민 17만여 명이 시민이 수도 런던도 영국으로부터에서 독립해 EU에 가입하자는 청원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BBC, 2016년 6월 24일자). 브렉시트 결정 이후 1년이 지난 2017년 8월에도 3차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되자, 영국 내부에서도 브렉시트 결정을 취소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BBC, 2018년 6월 5일자).
아울러 브렉시트 결과는 연령별, 성별 기준에서도 차이를 드러냈다. 18세에서 24에 해당하는 청년층 남성들의 61%는 영국이 유럽 연합에 잔류해야 한다고 표명했지만 반면, 50세에서 64세의 장년층 남성의 61%는 반대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투표를 던졌다. 특히 18세에서 24세 해당되는 여성들은 동일 연령대의 남성들보다 압도적인 비율인, 80% 이상이 유럽연합 잔류를 선택했다. 이는 청년세대가 중장년층보다 앞도적으로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에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젊은 세대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결정권은 현재 영국사회의 중장년 세대가 박탈했다는 것에 대한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BBC, 2017년 12월 8일자).
아울러 교육수준에 따라서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도 상이하게 나타났다는 점도 밝혀졌다. 영국의 HUFFPOST(2017) 는 교육이수 경험 및 학력수준에 낮을수록 영국의 유럽연합과의 결별에 표를 던졌지만,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영국이 유럽 속에서 성장과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인종적 소수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영국이 유럽에 잔류해야 한다는 브렉시트 반대에 표를 던졌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영국의 백인 노동자 계층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Statista, 2018).
논의를 확장하면 이들은 ‘영국’과 ‘유럽 연합’, ‘우리’와 ‘그들’, ‘영국 정주민’과 ‘이주민’에 대한 구분 의식이 보다 선명하고, 이민자를 향한 타자화 인식이 더욱 명료한 그룹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백인 노동계층의 반(反) 이민 정서는 동일한 직업군과 일자리를 이주민과 경쟁해야 하는 경우, 더욱 커지게 된다(김진희, 2017). 이들은 세계시민교육을 학교교육 과정이나 일상 생활세계에서 접해 본 경험이 낮을 수 있으며, 이주민들이 수반하는 차이와 다양성에 대해서 긴장과 거부감을 가질 우려가 있다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2015년 발표된 한국의 다문화수용성지수 관련 보고서에서도 드러났듯이,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노동계층에 종사할수록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이 높고 다양성에 대한 관용성이 낮게 나온 일맥하는 대목이다(여성가족부, 2015). 한 사회 내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다양성과 개방성에 대한 균열과 격차는 일상의 영역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는 데도 제약이 될 수 있다.
근현대사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제국의 유산을 품고 세계의 문화를 탈경계적으로 흡수하던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역설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국력을 과시하며 영국연방을 구성하는 국가 간의 거래에 차별관세를 적용하면서 금융, 무역, 문화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며 영국화(British Commonwealth)를 시도하며 세계를 향해 거대한 개방주의를 추구했던 영국은 오늘날 국경의 문을 닫고 브렉시트를 결정한다.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볼 때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영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보수주의와 우경화를 상징하는 신호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EU라는 초국가적 공동체에서 탈퇴하고 국가의 빗장을 닫고 새로운 번영을 모색하겠다는 대국민적 결정은 영국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이론적으로 파헤치면서 ‘위험 사회’(risk society) 담론을 펼친 울리히 백(Ulrich Beck)은 세계시민주의는 계몽적 규범이 아니라 개개인의 일상생활의 실제 과정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브렉시트는 세계시민성의 열림과 닫힘을 보여주는 주요 지점이 되고 있다.
시민성(citizenship)논의에서 차별과 배제의 문제는 핵심 쟁점이다. 누가 시민이며, 누가 시민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는지는 오랫동안 시민성 논쟁에서 다루어진 문제다. 세계시민성 관점에서는 한 개인이 어떤 이유로도, 즉 인종.계층.국적.종교.외모 등 어떤 이유로도 한 개인은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과 평화, 번영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과의 결별은 세계공동체와의 공존의 문제, 다양성 존중의 문제, 인권과 정의를 위한 글로벌 참여 행위 문제에서 소극적인 시민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브렉시트 국민 투표는 영국사회에서 타자와 이질적 집단에 대한 무관용적인 폭력이 커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Audrey, 2016). 이 문제는 영국 사회의 반(反)다문화주의, 반(反)이민 정서, 이주민과 실업 문제, 테러 이슈 등 같은 정치.문화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2017년 한 해 동안 수도 런던에서만 규정한 3건의 공식 테러(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규정함)가 발생했다. 3월 22일 국회의사당 주변 차량 테러, 6월 3일 런던브리지와 버러 마켓에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 6월 19일 북부 핀즈버리 공원 근처 이슬람 사원 테러가 그것인데, 이는 영국 시민들에게 ‘이주민은 잠재적 위험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반(反)이민주의 정서를 결과적으로 강화시키는 충격 기제가 되었다.
이에 앞서 2011년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다문화정책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하면서,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관용을 원칙으로 하는 다문화주의영국사회에서 실패했다고 말했다(김진희, 2016). 오히려 다문화주의로 인해서 오히려 영국 사회 내부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목소리에서 문화 다양성과 사회통합에 대한 회의론적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회의론 속에서 영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테러 때문에 ‘이주민=무슬림=잠재적 테러집단’이라는 등식이 시민사회에 스며들면서, 영국민들은 영국의 국경을 점진적으로 닫는 것이 ‘영국다움’(Britishness)을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게 된다(New Europeans net, 2017년 3월 30일자). 이러한 인식을 가진 다수의 영국시민들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에 대한 구분화(categorisation)와 타자화의 경계선 긋기가 가속화되면서 사회통합을 향한 태도는 위축되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내 정치경제적 측면과 국제적 헤게모니 측면이 얽혀 있다. 영국의 유럽 탈퇴를 지지하는 입장(leave EU)과 ‘유럽 속의 영국’을 지지하는 입장(Remain EU)은 선명한 차이가 있다. 후자는 유럽체제에서 영국의 부를 창출하고 유럽동맹 내에서 국가 안보를 지키자는 입장이자만, 브렉시트 탈퇴를 이끈 전자의 입장은 고용과 안정성이라는 손에 잡히는 이슈와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이 켜켜이 둘러싸여 있는데 그 입장은 다음과 같다. 특히 국제이주, 이주민에 대한 반감과 회의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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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주민들은 영국의 저숙련 일자리를 잠식하고, 노동 임금을 삭감해서 받기 때문에 실업, 저임금 등 영국 본토 국민들의 노동 환경과 취업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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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에서 흘러들어온 이주민은 지역 학교에서 건강보험과 교육 등 공공 서비스를 무상으로 누리는데 이는 영국민의 세수 부담을 증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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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리비아, 시리아에서 발생하는 난민의 서유럽 행렬은 국제이주 위기를 가속화시켰고 이것이 영국의 안보 위협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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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역의 이주민은 영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변질시켰다.
그런데 브렉시트를 국제정치의 세력균형 헤게모니로 논의하는 관점도 있다. 안문석(2016) 은 브렉시트는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결합된 EU에서 영국의 견제의식이 발동해서 나온 산물로 보았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번접한 일에 관여하기 보다는 국익을 추구하는 ‘화려한 고립(splendid isolation)을 추진하며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추구한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은 그리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안문석, 2016:113). 유럽연합 탈퇴는 금융과 난민 문제 등 독일과 프랑스 중심으로 이루어진 굴직한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유럽보다는 민족적, 문화적 동질성이 높은 미국과 동맹을 추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난민문제, 영국이 EU 재정 부담 등이 외형적 논리이지만 그 깊은 이면에서는 영국의 오랜 외교 고립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동인이 된 것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가진다.
브렉시트의 직접적 동인인 난민문제, 저임금 노동력의 유입으로 인한 영국 저소득층의 반 EU 정서지만, 영국의 세력 균형 전통도 브렉시트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중략). 영국은 세계제국을 형성했고 열강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실제 여전히 세계도처에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마지막 군주제를 폐지하지 않고 영연방을 유지하는 나라이다. 이런 시각에서 8세기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일으키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정치 경제 제도로 처음 발전시킨 나라로서 제국을 이루었던 영국은 향수를 가지고 있다(안문석, 2016: 121~124).
한편 서영표(2016) 도 표층적으로 나타나는 인종주의, 반이민정서나 경제적 이해관계로 브렉시트를 해석하는 것은 협소하다고 분석했다. 브렉시트의 영향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라는‘사건’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매우 복잡한, 때때로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다층적 기제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영국 국내 정치상의 신우파, 신좌파라는 진영 논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은 영국 모델을 충실하게 반영하였지만, 영국은 유럽 연합과의 결속에서 좌절, 저항, 연대를 갈구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지구공동체의 이상을 폐기하였다. 브렉시트 결정은 인종과 국적으로 분절화된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을 반추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주목을 끈다(서영표, 2016: 215). 즉 브렉시트는 영국의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라는 옷을 입고 등장했지만, 영국의 국내 정치 역동 속에서는 합리적인 유럽잔류파와 국수주의적인 탈퇴파라는 두 패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분열은 가속화되었다. 영국의 많은 사람들, 노동하는 민중들은 영국의 현실에 불만이 많았고, 유럽연합에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뭔가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선택지는 유럽 잔류와 탈퇴라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섣불리 브렉시트는 모든 사회적 위기의 원인을 영국의 주권 상실과 외국인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는 극우파적인 선동에 휩쓸린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노동계급 사람들을 백인우월주의에 찌든 인종주의자들로 단편적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서영표, 2016: 227).
브렉시트 과정에서 시민들의 거리 시위에서 ‘난민과 집시, 유색인종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퍼지는 등 공공연하게 인종주의적 선동이 진행된 것은 그동안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영국의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통합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Hoskins, 2016; James, 2016). ‘유럽’ vs ‘영국’이라는 국수주의적인 프레임을 강화하고, ‘영국노동자’ vs ‘이주노동자’라는 인종차별적 프레임을 고착화시키면서, ‘유러피안 정신을 가진 합리적인 중간계급’ vs ‘영국고립주의를 외치는 비합리적이고 노동계급’이라는 구도를 재생산시키는 것은 영국사회의 분열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서영표, 2016; New Europeans net, 2017 년 3월 30일자). 브렉시트 과정과 그 결과가 남긴 숙제는 아직 풀지 못했다. 영국의 국경을 닫고, 반이민주의와 반다문화주의 정서를 강화시키는 지금의 영국사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브렉시트 경정으로 ‘주권을 지킨’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지금보다 더 긴축 재정을 강요받고 복지가 축소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유럽연합을 탈퇴한 후에도 복지수당은 축소될 것이고 영국인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공원 등 공공시설 지원 감축되고 유럽에서 유입되던 EU 대학생의 축소로 인한 학비 상승, 교육 불평등도 심화될 수 있다(James, 2016). 브렉시트를 결정하기까지 지금의 영국인들을 좌절하게 하고 분노하게 했던 것은 유럽연합의 강요한 것도, 외국인노동자들이 악화시킨 것도 아니라, 신자유의적 체제라는 서영표(2016:228-229)의 비판은 명료하다.
브렉시트로 인해서 세계시민의식은 더욱 메말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되었다. 국제적 연대의식의 결정체를 응집적으로 보여주는 사태가 국제난민 이슈이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EU 회원국이 분담해야 하는 난민할당제의 책무에서 표면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외교적 입장과 사회심리적 측면의 정당성과는 다른 문제이다. EU체제에서 난민 문제는 화약고가 되고 있으며 국제적 연대의식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난망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연합 내부의 난민정책에서 연대의식을 갖춘 책무와 부담의 배분에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였다. 예를 들면, 2015년 9월 유럽집행위원회가 제안하고 내무장관특별이사회가 결정한 난민배분이 실현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 결정에 따른 책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일부 회원국이 주저하거나 아니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회원국에 대해 의무를 지우는 기제(메커니즘)를 마련하는 일은 앞으로 당분간 실현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예상하건대 그러한 실현은 기껏해야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의 연대’로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허영식, 강현석 2018:22).
브렉시트 이후 현재 유럽연합의 난민 수용에 대한 각종 회의와 회담에서도 나타나듯이 난민 수용의 책무, 부담을 배분하고 실천하는 문제에서 세계시민적 연대의식과 포용적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허영식, 강현석 2018: 23). 유럽 내부의 경제적 위기로 인해서 난민은 사회,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기존의 체제와 공동체의 문화에 균열을 주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의 오류가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브렉시트를 통해서 세계시민교육의 중요성이 반증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더 이상 영국에서 이주민들이 사회적 타켓이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고 시민사회 영역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타자화를 통한 사회적 균열을 교육을 통해서 멈추어야 한다. 그동안 영국이 추진해온 세계시민교육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참여적 시민교육의 의제는 다시 영국사회 정책의 우선순위로 복귀해야 한다. 영국의 대중들이 삶의 이슈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생활정치 맥락에서 브렉시트에 참여했듯이, 보다 시각을 확대하여 세계공동체 관점에서 국내 문제와 국제 이슈의 상호연관성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해서 국가적, 지역적, 지구적 차원에서 더 나은 삶터를 만들기 위한 세계시민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것은 학교교육의 교육과정은 물론 성인교육의 프레임에도 반영되어야 하며 무형식학습으로서 직업훈련, 지역공동체 활동, 문화예술 활동에도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동안 데이빗 카메론이 이끈 보수당이 정권을 잡아온 잉글랜드 지역에서 정부예산 책정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교육은 학교교육에서 비주류 교육으로 치부되어 왔고(Hoskins, 2016), 정치참여와 사회적 정의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경시되어 왔다(김진희, 2017). 그런데 이에 더해서 브렉시트 이후의 시민교육은 세 가지 측면의 핵심 도전에 직면해 있다(Audrey, 2016: 12-13).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점증하는 국제 난민과 사회적 소수자의 증가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인권과 사회적 정의를 향상시키는 교육적 이니셔티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도전 과제이다. 특히 영국의 슈퍼-다양성(super diversity)을 직면할 때 유럽과 영국의 이민자는 과거의 식민지의 주민들이 유입되는 정통적 이민과 달리, 냉전 이후 해체된 동유럽과 중앙 유럽 국가의 국민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서 서구 유럽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 경제, 문화적 영역에서 이민자에 대한 타자화(他者化)가 심화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응집력과 통합력은 취약해지게 된다. 인종, 민족, 종교적 배경이 다른 이민자를 침입자, 타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고 경제 활력을 주는 사회의 자원으로 인식하도록 의식을 전환하는 교육이 필요하지만, 아직 시민교육의 힘과 영향력은 역부족이다.
둘째, 브렉시트 전후로 다양성과 사회적 통합 그리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의는 폐쇄적인 방향에서 정치담론으로 활용되어 왔는데 여기서 시민교육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도전 요인이다. 시민교육에서는 근본적으로 국가 정체성과 시민성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동시에 ‘우리’와 ‘그들’이라는 국민국가의 경계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이해관계, 즉 자국의 국민과 국민국가의 경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세계시민적 연대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의 역할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교육의 전통은 브렉시트 시대에 취약해지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이슬람’이라는 키워드는 다문화주의를 급속하게 움츠려들게 하는 닫힌 박스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 영국적인 가치(British Values)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누구를 위한 시민교육인가라는 명시적, 암묵적 긴장관계가 심화되고 있다(Audrey, 2016). 영국의 정치엘리트들의 보수 우경화 움직임이 ‘이슬람=범죄집단’이라는 인식으로 곧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ISIS 테러이후 대중의 신경쇠약과 경계심은 ‘이슬람으로 물드는 유럽, 서구 가치가 이슬람으로 인해 전복당할 위기’라는 음모이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인종차별주의 형태로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가 보다 확산되고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 자각되면서, 그동안 포용적이고 모든 이의 인권을 강조한 가치를 지향했던 세계시민교육은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 전역에서 흔들리고 있다.
셋째, 유럽의 무슬림 인구와 무슬림 인구와 급진 무슬림을 타겟으로 조준한 안보에 대한 교육정책이 현재 영국의 시민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교육에서 사회정의와 공정성을 강조하고 모든 학습자의 시민적 형평성(civic equality)을 강조해온 시민교육을 흔들고 있다. 2015년 영국에서 발표된 <The Counter-Terrorism and Security Act 2015> 가 잉글랜드 전역의 지방자치기구, 학교, 사회단체 등에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괄적으로 적용됨에 따라 암묵적으로 무슬림 배경을 가진 학생, 청소년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비의도적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독트린이 되면서 시민교육에서 ‘안전’가 더욱 중요한 요소로 방점이 찍히게 되었다. 기존에 무슬림 테러그룹과 연관된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무슬림 청소년들은 비명시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Bank(2017).
같은 맥락에서 심성보(2016) 는 브렉시트 이후(post-Brexit) 영국의 시민교육은 체질적으로 달라져야 하며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고 역설한다. 도전은 위기이자 새로운 돌파구라는 양면성을 함축한다. 정책적으로 세계시민교육이 퇴행하고 공동체의 경계선을 더욱 명료하게 구분하는 분절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브렉시트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인간, 지역, 국가, 세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민교육의 공론의 플랫폼이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정의와 세계시민적 정체성을 심도 있게 다루는 교육 담론이 흔들리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브렉시트라는 세계적 흐름에서 시민교육이 일상의 정치행위와 시민사회 참여라는 점에서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에서 유럽의 가치와 의미, 세계시민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참여적 시민을 키우는 지식, 가치, 기술을 함양하도록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아젠다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맥락에 맞추어 부활시켜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불평등을 파악하고 더 나은 사회변화를 도모하고, 모두가 향유하는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는 초국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더불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 및 그 복잡다단한 과정에 참여하고, 학교, 대학, 일터, 지역사회 등에서 이러한 일상의 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는 국민국가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를 향한 소속감과 공유된 주인의식을 증진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심성보, 2016).
Ⅳ. 브렉시대 이후 세계시민교육의 방향과 시사점
지금까지 영국의 브렉시트의 다각적인 차원을 분석하고 그것이 세계시민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쟁점을 고찰하였다. 영국의 시민들이 왜 브렉시트에 찬성하고, 왜 반대하며 각자의 평온한 일상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찬반 집회 시위에 참여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 곧 삶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EU 탈퇴로 프랑스, 독일 등에서 관세 없이 들여오던 농산품과 식료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영국에 들어오던 EU 국가들의 저숙련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주노동이 어려워지면서 영국민들은 인력난 문제를 겪게 된다. 앞으로 저임금으로 고용하던 동유럽, 남유럽 출신의 베이비시터를 누가 누구로 대체할 수 있을지,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던 EU 출신이 맡았던 배관공.청소부.IT인력.간호사 인력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집값은 상승하는지, 실업률은 어떻게 되는지 등 복잡한 셈법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일상 생활에서 ‘나’의 삶의 문제로 복잡다단하게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더 큰 틀에서 인식해야 하는 것은 보면 이러한 결정을 통해서 덕분에 영국 시민들은 삶 속에서 시민학습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련 사태가 나에게 주는 영향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관점을 획득하고,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관조/경청하면서 브렉시트라는 정치사회적 ‘구조’를 자기 일상 생활세계에서 스스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직면하는 삶의 경험’으로 삼는 시민 참여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 시민의 이러한 결정은 시민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 어떤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일상의 시민학습의 계기가 된 것임에 분명하다.
세계시민교육은 학교교육에서 교육과정을 통해 다루어지는 시민교육도 장기적으로 유효하지만 일상 생활세계(life-world)에서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경험하는 시민학습에 초점을 두고 실천되어야 한다. 한층 열린 형태로 시민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개인들은 세계와 ‘나’의 관계를 자기주도적으로 탐색하고, 이질성과 다양성을 직면하면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하며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삶의 경험을 새롭게 직조하고, 변화를 이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유럽적인 것, 국제기구, 난민과 소수자에 대한 존중, 세계 속에 연결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들이 브렉시트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지 성찰하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에서 나타난 사회 갈등과 보이지 않는 긴장을 영국사회가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Audrey, 2016). 유럽이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정신을 기반으로 국경을 넘는 세계시민적 마인드를 키워왔지만, 브렉시트는 그러한 세계시민성이 표상에 그칠 뿐,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마인드에는 투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반영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는 세계시민교육의 효과가 있다, 없다라는 영향력 논쟁이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적 위기와 분열이 시민사회의 개방과 폐쇄에 긴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처럼 교육과 학습은 이러한 딜레마적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New European net(2017 년 3월 30일자)은 “Brexit: What now for European and Global Citizenship Education?”라는 비평문을 통해서 브렉시트로 인해서 더욱 위태로워진 세계시민교육을 부활시키기 위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민자, 무슬림, 이주노동자를 타자로 규정하면서 순수한 영국다움을 다시 찾겠다는 우경화 논리로 인해서 세계시민교육의 가치와 실천이 훼손되고 추락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이다. 오히려 브렉시트 투표 이후 협소해진 시민교육을 더 넓고 확장적인 가치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으며 특히 잉글랜드 전역의 교육과정을 다시금 비판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제 유럽의 내부와 외부, 국민국가에 대한 논의는 더욱 날카로운 위험요소와 갈등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브렉시트 투표결과에서 나타났듯이 미래 사회의 주체인 젊은이들이 유럽 속의 영국을 주장하고, 유럽과 국제이슈에 대해 열린 자세로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브렉시트 여파로 인종적 다양성, 다원성에대한 관용이 훼손된 사회에서 시민들은 더욱 스스로 행하며 돌아보는 관용의 질적 수준(qualities of tolerance)을 높이고 나의 이웃, 세계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New European net, 2017 년 3월 30일자). 이 지점에서 영국의 교육시스템이 개방적으로 열려 있어야 브렉시트 이후의 삶의 모습들, 즉 노동, 환경, 주택, 문화생활, 정치활동 등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열린 자세로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제 영국 학교들은 학습자들이 브렉시트 맥락과 조응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이해하고 형성할 수 있도록 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이를 담는 세계시민교육의 교육과정과 콘텐츠, 방법론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결정한 정책입안가를 어떻게 설득하고 새로운 세계시민학습의 기회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질문만 쌓여가는 시점이다. 이제 교사, 연구자,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브렉시트 이후 세계시민교육의 향배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에 대해서 오드리(Audrey, 2016)의 연구는 몇 가지 제언을 남긴다. (1) 교육과 사회정의의 관계를 보여주는 경험과학적 연구가 활성화되어하며, 도덕과 정치적 책무성에 대한 비판적 학습이 필요하다. 개인의 도덕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교리적 방식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관계망 속에서 실질적인 인성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정의의 프레임 속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제도와 문화,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2) 교사는 달라진 시대에 영국의 권리와 역할을 살펴보고, 자신이 가진 정치적, 도덕적 책무성을 강화하면서 학생들을 적극적 시민으로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시민교육은 영국 국내의 이슈였지만 글로벌시대 시민교육은 지역적, 국가적, 전 지구적 관점으로 다각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인권에 기반을 둔 세계시민교육이 실천되어야 하며, 개인 시민들이 동료시민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3) 시민교육은 앞으로 취약계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찾는데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하고 난민과 이주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브렉시트가 백인 노동계층의 분노와 박탈감을 이용하고, 무슬림, 이주민 등 특정 그룹을 희생양으로 삼아 불타오르는 인종차별의 분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권 기반의 비판적인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하다. (4) 브렉시트 시대에 학생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키우고, 이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로 인식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정치적 참여의식과 연대의식이 브렉시트 이후의 삶에서 사회적 결속과 공공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기여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2015년 9월에 열린 제 70차 유엔 총회를 통해서 국제 사회는 인류 공영의 번영을 위해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서 총 17개 글로벌 의제를 선언했다. 한국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193개 유엔회원국은 2016~30년까지 ‘5P’라는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한, 즉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발전(People), 모두의 공동의 번영 추구(Prosperity), 평화로운 세계 구축(Peace), 지구의 보호(Planet), 모두가 협력하고 참여하는 파트너십(Partnership)으로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계시민사회의를 구축하자고 결의했다.
이처럼 국제 사회는 이처럼 세계시민교육을 지향하고 있는데, 정통적인 강대국의 파워를 가진 영국이라는 국민국가는 외형적 국경을 약화시키고 유럽의 시민을 양산하려는 EU의 노력에서 빠져나와, 자국민 중심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폐쇄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가중으로 인해 세계시민적 개방성의 가치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부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집권까지, 유엔이 추구하는 다자 협력과 세계시민적 번영은 움츠려든 표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열정적으로 EU 잔류운동을 벌여온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의 갑작스런 피살에 대해서 영국의 일간지《가디언》은 “인간성과 이상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는 논평을 냈다(경향신문, 2016 년 6월 17일). 거창하게 세계시민 담론을 논하지 않더라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류애와 보편적 공공선은 오히려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최근 많은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하면 위험한 이방인의 유입을 효율적으로 막는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Benhabib, 2004). 그러나 모든 시민권은 단순히 일방적인 자기규정이 아니라, 지구촌의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영국은 EU의 제도적 통제와 협약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영국의 시민권을 온전히 추구하는 방향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했지만, Benhabib(2006) 의 논의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시민권과 국가 주권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자기 창조적인 과정을 반복해서 거쳐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분접적으로 구분해 온 시민 vs 외국인, 우리 vs 타인 사이의 간극을 유동적이고 민주적으로 반추할 수 있어야 하면, 궁극적으로 탈국가적, 탈민족적 세계시민적 연대가 실현될 수 있다(벤하비브(이상훈 역), 2008).
앞으로 세계시민교육은 그 사회의 가장 변두리에 존재하는 있는 소수집단을 존중한다는 원칙에서 전개해야 한다. 가치가 무너지고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높아지는 유동하는 세계에 소외와 불평등 문제를 논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2009)의 언어를 빌리자면, 세계시민교육은 인간의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에 맞서는 연대의식을 키우고,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 사이의 유대’를 끌어올리는 일상의 교육과 학습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세계시민교육이은 학교 교육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모든 연령의 학습자들이 인권, 사회정의, 다양성, 성평등,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관련 지식과 태도를 함양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차원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글로벌한 수준의 시민 참여와 지역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참여와 기여는 모든 차별을 반대하고 형평성과 공존의 학습을 다루는 것이다(김진희, 2017).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는 그런 점에서 ‘가르침’으로서 세계시민교육의 교과서로 치부되는 아니라, 시민들이 학습 주체로서 자기 앞에 당도한 삶의 경험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살아있는 세계시민교육의 내용이자 삶의 경험(experience of life)이 될 수 있다. 특히 탈국민적, 탈경계적 시민성의 함양을 도모하는 추상적 개념으로서 세계시민교육의 위상은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현실적인 삶의 선택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국내외의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실천하는 책임 있는 시민이 곧 세계시민이다. 중요한 것은 형평성을 제고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받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의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바탕으로 ‘참여하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에서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의식은 달콤한 신기루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자율성을 가진 시민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반추하는 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으며(Benhabib, 2006), 가장 근본적인 단위인 지역공동체 안에서 구현되도록 하는 공공의 과제를 남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한계와 후속 연구 과제의 필요성을 논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세계시민교육과 브렉시트의 관계를 살펴보고, 브렉시트로 인한 사회적 영향이 세계시민교육에 미치는 제약과 쟁점, 그리고 향후 세계시민교육의 방향과 시사점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영국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교육(global education)과 시민교육(citizenship education)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결합하고 병립하는지를 분석하지 않았다. 아울러 학교교육과정에서 시민교육이 다루어진 방식과 역사성이 브렉시트와 영국사회의 세계시민담론 변화에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는지를 분석하지 못했다. 학교 이외에도 시민사회 단체들이 주창해온 글로벌 교육이 영국인들이 스스로 형성하게 된 세계시민성과 어떤 양태로 결합했기에 브렉시트라는 탈(脫) 유럽적 시민성을 형성한 것인지를 내밀하게 논증하지 않았다. 또한 본 연구는 학술논문으로서 여러 가지 논의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지만 학술 자료의 한계로 인해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담지 못했고, 선행연구와 2차 자료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제약을 가진다.
그러나 사회과학 연구에서 담론 분석은 선행 연구의 양적 부족이라는 도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도 유의미한 데이터와 논점을 서로 비교하고, 통찰하는 연구 방법론은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본 논문의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향후 교육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지지 않았던, 그러나 시대적 시사점을 주는 브렉시트와 교육의 제 관계, 나아가 세계시민교육의 개념적, 실천적 관계를 심층적으로 고찰함으로써 그것의 학술적 의미를 넓힐 수 있는 다각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