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Korean Society of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Article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위한 수업방안 탐색: 조선통신사 기억의 장소를 통한 트랜스문화학습*

차보은**
Boeun Cha**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연구원, eeeyapboeun@gmail.com
**Researcher, The Institute for Educational Research, Yonsei University

© Copyright 2020 Korean Society of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n 30, 2020; Revised: Aug 20, 2020; Accepted: Aug 21, 2020

Published Online: Aug 31, 2020

요약

동아시아공동체는 실현가능한 것인가?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얽혀 다양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점점 더 관계가 악화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화로 인한 상호의존, 인류가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하여 배타성을 극복하고 포용적이고 수용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경계를 완화하고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 형성을 위한 교육적 방안을 탐색하였다. 동아시아, 특히 한·일 평화와 교류의 역사라는 의미를 가진 조선통신사 기억의 장소를 중심으로 트랜스문화학습을 시도하였다. 횡단과 연결에 관심을 두는 트랜스문화는 국민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을 위한 문화학습의 방법이 된다. 일차적으로 조선통신사 기항지 중 하나인 우시마도에서 다양한 자료와 개인의 기억들을 중심으로 교재개발을 하고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계획-실행-반성-다시 계획하는 실행연구를 하였다. 첫 번째 실행에서 국가 중심의 단일한 서사를 넘고 다양한 관점에서 조선통신사를 바라보는 수업을 계획하였으나 학생들은 ‘국가’를 더 강하게 느끼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두 번째 실행에서는 가라코오도리라는 소재를 통해 ‘국가’와 ‘문화’를 조금 느슨하게 볼 수 있는 수업을 시도하였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국가=문화라는 인식에 ‘헷갈림’을 경험하며 문화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경계와 벽을 단시간에 완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문화를 가로지르는 경험을 통해서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정체성이 형성되어 간다면 동아시아공동체도 상상 가능한 미래가 될 것이다.

Abstract

Is the East Asian Community feasible? Countries in East Asia are experiencing multiple conflicts in a multi-layered and complex way, and it seems that the relationship is getting worse. However, it is necessary to overcome the exclusivity and move toward an inclusive and receptive direction in order to face the interdependence caused by globalization. To this end, I explored educational method to cross the boundaries and form multiple and complex identities. Joseon Tongsinsa, symbolize the history of peace and exchange in the East Asian region, especially between Korea and Japan. I did an action research in education centering on the place of memory of the Joseon Tongsinsa. Transculture, which focuses on crossing the border of a nation-state and connection, becomes a method of cultural learning to form an East Asian community. First, I developed a lesson plan by collecting various narratives and personal memories in Ushimado, one of the port destinations of Joseon Tongsinsa. And repeated to plan-action-reflect-replan the lesson in elementary schools in Korea and Japan. In the first practice, I planned a lesson that survey beyond the single narrative centered on the nation and looked at Joseon Tongsinsa from various perspectives, but some students still showed a strong feeling of ‘the nation’. Therefore, in the second practice, I tried a class in which student could loosen the connection between ‘Nation’ and ‘Culture’ through ‘Karako-Odori’. In this lesson, students experienced a little ‘confusing’ in the perception of the nation=culture, and had a chance to rethink what culture is. It is difficult to loosen the borders and boundaries in a short time, but the East Asian Community will become an imaginable future if an open identity is formed through experiences across cultures.

Keywords: 동아시아공동체; 트랜스문화학습; 조선통신사의 기억; 장소와 정체성; 실행연구
Keywords: East Asia Community; Transcultural Learning; Place of memory of Joseon Tongsinsan; Place and Identity; Action Research

Ⅰ. 들어가기

‘동아시아’는 실제적이고 유효한 개념인가? 라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되기 어려운 다양한 논의와 반박이 예상된다. 또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야기 하는 것은 새로운 지역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국가들은 역사 인식 문제, 국가 간 영토분쟁, 안보현안, 무역 갈등, 세력균형 갈등 등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안고 있다. 또한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상호의존, 안보협력, 개별 국가 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문제 등은 단일 국가 안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국경을 넘는 연대가 필요하다. 따라서 배타적인 집단으로서의 동아시아 공동체가 아니라 갈등 해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상호 협력하는 연대로서의 동아시아 정체성은 세계시민의식과 긍정적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동아시아 지역 주민들이 동아시아적 정체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동아시아공동체는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 안보 문제 등 이 지역의 평화로운 공존과 지역협력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며(나종석·권용혁·이진원, 2009: 183), 이는 인류의 평화와 연결되는 쟁점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정체성을 염두에 둘 때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기억과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분쟁·침략·피지배 등으로 인한 갈등과 대립이 어떻게 치유되고 극복될 것인가 그리고 동아시아의 각 개인들이 공감하고 지향하는 미래 구상에 대한 이론적 논의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 연결될 때 실현가능한 미래가 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교육적 실천 방안을 탐색해보았다. 동아시아공동체를 위한 공통의 가치와 이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하지만 문화, 가치, 전통이 다원적으로 공존하며 상호 결합하고 소통 가능한 개방적 연대 구상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구상을 위하여 ‘문화’와 ‘국가’의 연결을 일정부분 약화시키는 교육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경계를 가로지르고 횡단에 주목하며 혼성성에 관심을 가지는 트랜스문화에 주목하여 보았다. 트랜스문화는 점점 더 글로벌화 되는 사회의 문화변화 현상들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Welsch (1999)에 의하면 트랜스문화는 구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를 섞고, 문화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데 관심을 가지게 한다. 트랜스문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경계를 횡단하고 구분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작업은 완결형일 수 없으며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동아시아맥락에서 트랜스문화의 과정을 경험하고 교육의 상황으로 가져오기 위해 조선통신사의 기억에 주목하였다. 200년간 한국과 일본의 공존, 공생의 외교사절단으로 우호의 조선통신사의 행렬은 ‘과거’ 그들이 지나가고 머물렀던 지역의 축제로서 ‘현재’에 재현되며 새로운 교류와 공존의 경관을 창조하기도 하며 과거의 기억이 현재 지역의 문화로 전승되는 과정을 보이기도 한다. 500여명의 인구가 약 10개월 동안의 여정은 외교의 상황을 넘어 무수한 문화 접변의 상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경험과 기억의 내용에는 ‘만들어져가는’ 문화 이야기와 새로운 정체성을 상상할 수 있는 소재들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조선통신사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국가의 기억에 한정된다는 제한점을 가지고 있으나, 단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국가’의 우호적인 교류의 역사라는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류의 기억들 중 조선통신사라는 사례를 통해 국가를 넘는 결합과 연결들을 발견하고, 이러한 실천이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이러한 실천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 과정을 기획하였다. ➀ 지역을 중심으로 조선통신사의 기억을 따라가 보았다.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의 경관, 지역 문화로의 수용과 변동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이 지역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정체성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현장 연구와 문헌 자료를 통하여 자료를 수집한 후 ➁ 지역에서 발견된 교류의 의미, 문화 혼종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트랜스문화학습을 위한 사회과교재 개발을 구상하였다. ③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에게 학습을 적용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례지역인 우시마도는 오카야마현의 세토나이시에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로 지난 몇 년간 조선통신사 재현행사가 지역의 축제 형태로 열리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전승되는 가라코오도리라는 춤은 동아시아의 문화혼종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우시마도를 사례지역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에 두 차례 우시마도를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내러티브들을 모았다. 이 후 2018년-2019년에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실시하고, 학생들의 교육 경험을 분석하였다. 다양한 스케일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여전히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국가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경험을 통해,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연대와 연결이 확산될 것을 기대한다.

Ⅱ. 트랜스문화학습과 정체성

매년 학생들을 만나면 ‘문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질문을 한다. 2009년에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9년에도 학생들은 ‘역사’, ‘나라’, ‘전통’, ‘국가’ 등과 같은 단어들을 나열한다. 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다양성’, ‘다문화’ 등이 논의되고 널리 화자 되면서 ‘단일한’, ‘하나의’ 와 같은 수식어는 오히려 부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용어처럼 인식되어지기도 한다. 교육의 장에서도 문화의 다양성에 주목하며 분쟁과 배제 없이 공존에 관심을 두는 문화 교육이 당연한 흐름이다. 하지만 왜 학생들은 여전히 문화를 전통과 국가에만 연결시키는 것일까? 학교 현장에서 실시되는 다양성 관련 교육들의 실체는 여전히 경계와 차이에 주목하며 다름을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생긴다.

전통과 문화를 연결하는 것, 타문화와 자문화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은 상호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거쳐야 하는 과정일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전통문화를 교육함에 있어서도 상호 관계성과 연관성, 유사점 등을 이해하는 문화 수업 사례들(박상준, 2008: 29-45)을 통하여 글로벌·다문화 시대의 전통문화교육의 한계를 넘고자 시도하는 노력들이 상당 수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문화라는 이미지는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너무나도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어 언어 교육이나 역사 교육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국가 정체성 형성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문화교육은 정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의 확보와 문화적 정체성의 재생산을 위하여 국민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내적으로 국민들의 문화적 통합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서태열, 2004: 20). 그러나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은 이동과 흐름의 사회에서 도전을 받고 있으며, 지역, 국가, 세계의 다양한 층위에 따른 유연하고 다층적인 정체성에 관심을 가진다. 주어진 실체, 동일성, 연속성으로 인식되어져 있던 전통적 관점의 정체성에서 글로벌 시대의 정체성은 하나의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다양한 자아가 될 수 있도록 복합적이고 다원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고미숙, 2003: 6-9).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와 ‘문화’의 강력한 결합을 약화시키는 시도는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정체성, 나아가 동아시아정체성 형성을 위한 바탕이 될 수 있다.

1. 트랜스문화학습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이동과 이주는 타자 혹은 타문화를 마주하게 한다. 이때 발생되는 충돌, 갈등에 대한 고민들은 다문화, 상호문화, 트랜스문화 라는 용어들로 ‘타자’와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구상들이 애당초 어떤 거대 이론에 기초해 연역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현상들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해내고 유동시킨 개념이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들의 의미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혼용되는 데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최대희, 2016: 61). 따라서 이 용어들을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작업일 수 있다. ‘문화’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으나, 상이한 접두어들이 생성시키는 혹은 생성된 의미의 맥락들을 이해하고 포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와 해석의 방법들이다(최대희, 2016; 김성수, 2018).

최근 문화의 경계는 단순하거나 명료하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다층적이고 상호 겹쳐지고 침투하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국민국가나 민족 중심의 문화개념을 넘어서 문화의 외적 다양성과 내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문화다양성 교육(한경구 외, 2015; 한건수·한경구, 2011)의 필요성이 교육현장에서도 주장되고 있다. 트랜스문화학습은 문화를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길항적인 위치에 두지 않는다는 관점에 중점을 둔 문화다양성교육이다. 트랜스문화학습에서는 이동의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섞이고 연결된 문화에 관심을 둔다. ‘trans-’라는 용어는 ‘횡단하고’, ‘초월하고’, ‘가로지르는’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해석의 명확한 합의점은 아직 찾지 못하였으나1), 비판적이고,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접두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컨대,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한 접근을 지지하는 역사가들은 이를 중요한 전환이라고 여기며, 복잡한 층위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 인식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고 여긴다(오경환, 2017). ‘트랜스’로컬리티(Appadurai, 1996)’는 지리적으로 이동을 경험을 하는 자들의 지역 사회의 의미 변화, 즉 고정된, 주어진 장소가 아니라 그들이 이동하고 확장하는 맥락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한다.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은 ‘이쪽’ 그리고 ‘저쪽’에 모두 걸쳐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를 횡단하는 트랜스문화는 차이로 보이는 것들 가운데 공통점과 유사성을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며, 다문화, 상호문화 등의 용어로 잘 포착되지 않는 문화의 미묘한 관계들을 설명 가능하게 한다. 트랜스문화에 선두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신의학이다. 정신의학은 1950년대 트랜스문화 정신의학 운동을 만들며, 문화를 가로지르는 정신 질환 치료와 연구를 통해서 어떤 핵심적인 질병은 모든 문화에 존재한다는 것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서 증상들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소수 민족들의 증상이 정신적으로 불균형적이거나 조현병처럼 보여질 수도 있지만 트랜스문화적 접근을 통해 환자들의 인종, 언어 그리고 신념을 포함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다르게 진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Benessaieh, 2010: 21-22).

횡단과 섞임에 주목하는 트랜스문화는 기존 경계를 와해시키고 다른 표현들로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내기도 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것들이 유입되는 문화 환경 속에서 거듭 새로이 만들어가면서도 기존의 정체성을 단순히 벗어버리는 작업이 아니라 역으로 스스로 독자적이고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체성을 찾는 끝없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김연수, 2010: 38-39). 트랜스문화학습이라는 시도는 기존의 경계를 완화하고 동아시아공동체를 상상하는 교육적 방법이다.

2. 트랜스문화의 층위와 정체성
가. 거시적 수준 - 문화의 변화

문화 개념은 ‘문명’과 서로 짝을 이루는 대항적 개념으로 함께 근대 서구의 가치관을 표명하면서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해왔다. Herder(1966)에 의하면 문화는 세 가지 요소로 특징지어 지는데, 사회적 균질화, 인종 통합, 그리고 문화 간의 구분이다. 즉 모든 문화는 관련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형성하고, 모든 행동과 물체를 정확하게 그 문화의 명백한 예로 만들어 낸다. 둘째, 문화는 항상 민족의 문화로 표현되며, 셋째, 모든 문화는 다른 민족의 문화로 구별되고 분리되는 것이다(Welsch, 2009:1-2). 이러한 Herder의 개념은 내적으로 자기 고유의 것에 집중하여 동질화를 추구하고 외적으로는 즉 타문화에 대해서는 경계를 만들고 배타적인 영역을 설정하기 때문에 대립, 차별 그리고 배제의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한국문화, 일본문화, 미국 문화 등 국가를 경계로 문화를 정의내리는 것에 익숙하다. 국가를 경계로 한 문화 정의는 문화 내부적으로 동질성이 전제된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고도로 세분화된 사회는 동질성을 기본으로 하지도 않고, 완벽한 동질성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그 자체로 상이한 삶의 방식, 상이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현실을 진단하기 때문에 헤르더적인 문화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김연수, 2010: 39).

거시적인 수준에서 트랜스문화는 문화에 대한 대안적인 개념을 제공한다. 첫째, 문화의 내적 차별화와 복잡성의 산물이며, 이것들은 서로 침투하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다양한 생활 방식과 문화를 포함한다. 둘째, 오늘날의 문화는 극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얽혀 있다. 생활 방식은 더 이상 국가라는 문화 경계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같은 방식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얽힘은 이동이라는 과정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물질적, 비물질적 통신, 경제적 상호 의존성의 결과이다. 따라서 권력의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적으로 힘없고 약한 문화가 지배적인 문화로 이식되거나 전혀 관계가 없어보였던 인권, 젠더 문제, 환경 문제 등도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진다. 세 번째로 오늘날의 문화는 일반적으로 혼합적인 특징이 있다. 모든 문화, 모든 다른 문화는 내부적 영역이 되거나, 첨가가 된다. 이는 지구상 대부분의 곳에서 마찬가지이다(Welsch, 1999: 4-5). 이러한 문화 개념은 문화의 복수성과 한 나라 안에서도 사회적, 경제적 집단들이 지닌 특수하고도 다양한 문화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Williams, 1976: 126). 차별되고 특수한 문화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소위 고급문화라고 불리며 중심에 위치하는 문화들이 아니라 반대로 일상생활의 평범한 제도를 연구한다는 것이며 다양한 제도들이 어떻게 결합되며 고유성을 가지게 되는지, 그 과정과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Mitchell, 2000: 122).

따라서 앞으로 더 이상 이국적인 것은 없으며 완전히 고유의 것, 우리의 것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다. 한 문화는 다수의 문화들이 결합된 것이며, 우리 안에 다수의 타자성이 존재한다.

나. 미시적 차원 - 개인의 트랜스문화적 형성

국민국가는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장치였다. 국민문화는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이며 국민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국민국가에 안주하고 국민문화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문화도 아이덴티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西川(한경구 역), 2006: 362). 그러나 시공간의 압축으로 세계의 많은 사회가 문화적으로 혼합되고 이동이 증가하며 사회적 관계의 지리가 변화하고 있다. 많은 경우 그러한 관계가 점점 더 공간을 가로 질러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수준에서 확장되고 있는 글로벌화의 세력은 단수형일 수 없으며 여러 원근법을 필요로 하는 지평이 경합하는 장(場)이다. 따라서 다양한 시간적 두께와 공간적 중층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姜尚中·吉見(김경원 역), 2013: 16). 하나의 특히 민족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던 집단 아이덴티티에 대한 개념은 논쟁이 되었고, 대륙과 대륙 간의 유연한 횡단은 특수한 아이덴티티와 국적을 구분시켜 주었던 특징들을 파편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Giles & Middleton(장성회 역), 2003: 79). 따라서 아이덴티티의 개념은 글로벌화와 초국적 상황의 논의들 속에서 탐색되어야 한다. 종래 국민국가의 논리에서는 ‘하나’, ‘단일’, ‘균질한’ 국민의 단일성이 국가를 지탱하고 국가의 단일성(통합)이 국민의 아이덴티티를 보증했지만, 다양한 국민성에 기반 한 다문화 사회에서는 문화나 민족의 경계를 초월한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의 만남과 융합이 예상치 못한 아이덴티티의 변용과 구조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西川(한경구 역), 2006: 347-348).

사회학자들은 70년대부터 정체성 개념은 세계의 이동과 이주 현장으로 인하여 가능한 많은 정체성의 연속적인 실현으로 이해되고, 우리 모두가 다중의 애착과 정체성, 교차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Welsch, 2009: 5).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은 국가 정체성과 동일하지 않으며,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트랜스문화는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개인의 특정한 신념, 믿음, 실천 등에 관심을 가진다. 아프리카에 거주하며 프랑스어를 하지만 식민지 아프리카와 연결된 캐리비언들, 크레올의 정체성은 경계 지워진 공간 안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연결을 보여준다. 집단을 구성하는 추상적인 특징을 전제하며 한국인다움, 미국인다움, 아프리카인다움 등으로 표현되는 영토로 경계 지워진 정체성은 크레올이나 재일한국인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트랜스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양하게 변주하는 정체성을 설명하며, 국가로 구속되지 않고 혼성적이고 관계적인 정체성의 연속체(Identitary Continuum)를 상정한다(Benessaieh, 2010: 25).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만나고 연결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한 개인은 새로운 집단적 경계를 구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혼성적 정체성을 선택하기도 한다(권효숙, 2003: 109). 글로벌 시대의 문화는 점점 더 유동적이고 다양한 만남과 대화의 상황을 가능하게 한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 집단, 공동체 등이 더욱 빈번하게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명확하게 구분되고 단수로 칭해지던 문화와 정체성은 점점 더 상호 작용을 하고 섞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시대에 정체성 교육 특히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상을 위한 수업은 트랜스문화의 관점에서 제고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중심이 되거나, 구분되고 경계 지워진 영역 속에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연속되고 혼성된 정체성, 관계와 유사성에 관심을 두는 정체성 교육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랜스문화는 하나의 문화 내부에서 타문화와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타문화를 융합시키며 혼종 시키고자 하는 것을 말하며 트랜스문화주의는 ‘타자와 타문화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고자 하는’이데올로기라고 말하여지기도 한다(김성수, 2018: 18-19). 이는 자신의 문화를 기존에 익숙하고 친숙한 시각이 아니라 비판적 시각 혹은 최대한 타자화된 시각으로 보면서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맥락에서 보고자 하는 개념이기도 하고, 최대한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서로를 연결시키는 노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랜스문화로 문화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것은, 하나의 사유가 아니라 복합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며, 과정과 관계로 타자를 바라보는 장치가 되어, 차이라고 느껴지는 거리를 줄이고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장소와 정체성 교육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체성 교육을 위하여 장소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소는 시공간의 복수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장소를 통하여 개인과 개인 혹은 집단이 만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기도 하며, 인간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장소와 인간의 정체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널리 유효하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이러한 장소와 사람의 정체성 연결을 보여주는 문학적 사례이다. 마들렌의 향기와 함께 장소에서 소환되는 개인의 기억은 장소와 주체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 화자인 나(마르셀)는 고향의 두 갈래 길, 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별장가 등 자신의 삶을 형성했던 관련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며 자신의 삶과 지난 시간을 파악한다. 이렇게 기억이 장소에 구속되는 것은 주관성 자체가 필연적으로 장소 안에 놓이고, 공간화 되고 체현된 활동 안에 놓이는 방식의 기능으로 볼 수 있으며, 주체들의 정체성 자체가 자신을 발견하는 구체적인 장소들과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되는 것이다(Malpas, 1999: 176-177). 이러한 기억, 개인적이거나 자전적인 구성요소들을 갖는 기억은 전형적으로 구체적인 공간과 장소에 맞춰지며 기억 속에서 사람과 장소는 묶이게 된다(Malpas, 1999: 176). 과거의 기억은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되어 현재에 의미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물의 시공간적 질서는 장소와 공간을 통하여 구체화 된다. 예컨대 대성당이라는 기념물은 합의의 공간이다. 기념물은 개인화된 거울보다 훨씬 진정한 집단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단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합의를 실천하고 공간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모든 시대의 정복자들은 의도적으로 기념물에 불을 지르거나 마구잡이로 부수며 이를 파괴하고, 때로는 기념물들을 원래의 다른 용도로 전용했다(Lefebvre(양영란 역), 2001: 327-328). 장소에 인간은 능동적으로 개입하며, 단순히 정적인 공간 안에 갇혀있거나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 혹은 장소의 의미를 변화시키며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간다.

인간의 정체성이 장소들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배타적인 지역주의와 장소에 밀착된 정체성 구축이나, 장소를 단순히 공동체와 동일시하는 상황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장소와 공간을 채우고 경험하는 방식이 인간을 위치 지우는 방식에 깊이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소는 특정한 지역에서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새로운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Massey, 1994: 168-169). 또한 시공간의 압축이라는 상황은 그 관계에 다양한 변주를 가능하게 하며 지구상의 많은 장소들이 상호 관계를 맺으며 유동하는 정체성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동아시아가 연결된 기억의 장소는 다양한 주체들의 정체성과 기억들을 조우하는 장이 되기도 하고, 장소에 얽히고 섞여있는 기억과 의미들을 해석하는 것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며 정체성 형성에 적극적으로 관계할 수 있다.

Ⅲ. 동아시아 기억의 장소: 조선통신사 기항지 우시마도

1. 기억과 재현 그리고 정체성의 경합

오카야먀현 세토나이시 우시마도는 오카야마시의 중심부에서 동남방향으로 약 3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토나이해를 접하며 남쪽으로는 작은 섬들이 있다. 전형적인 작은 항구 마을인 우시마도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기억을 가진 장소이다. 조선통신사는 주지하다시피 ‘성신교린’을 기본 정신으로 삼은 한·일 관계의 대표적인 우호 모델로 꼽히는 기억이다. 조선통신사가 왕복으로 합계 40회 정도 머물다 간 기항지로서 정사·부사·종사관의 삼사만 상륙하여 숙박한 경우도 있지만, 일행전원이 상륙하여 머물다간 경우도 있으며, 배 안에 머물며 아무도 육지에는 내리지 않았던 경우도 2번 있었다(尹, 2010: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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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조선통신사 기항지 지도 출처: 일본정보관광국 https://www.welcometojapan.or.kr/board/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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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한 주체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적 행위 및 과정이다(전진성, 2003: 105).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기억되는지는 주체를 둘러싼 또 다른 개인들, 공동체, 집단 뿐 아니라 사회규범, 문화, 간섭 등에 따라 상이하게 구성된다. 따라서 기억은 단순히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타협을 하고, 매개되고 적응되는 것이다(Assmann(변학수·백설자·채연숙 역), 2003: 23). 조선통신사의 기억은 지역에 남아있는 유물, 건축물 등을 통하여 경관이 보존되거나 사라지기도 하고, 행렬의 재현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새로운 경관으로 창조되기도 한다. 재현의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차이’의 정치와 선택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재현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 있고, 배제된 것이 있으며, 무엇을 근거로 재현에 포함되고 배제되는가를 따져봐야 한다(남호엽, 2002: 6). 따라서 재현의 과정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속에 작동하는 정치와 지배적인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며 그 경관과 관련된 인간의 경험, 이해, 속성 등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시마도의 혼렌지(本蓮寺)는 예전 통신사들이 머물렀던 차실로서 현재에도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물건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통신사의 기억은 배제의 대상이었다. 당시 헌병대 사람들은 혼렌지를 찾아와 조선통신사가 남겨둔 필적과 도자기 등을 제출 또는 파괴를 요구하였다. 아마도 조선이 선진 문화로 전한 것들, 또 그러한 유물들이 가치 있는 것으로 보관되어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배제해야할 역사로 여겨졌던 것이다. 현재 혼렌지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수많은 물건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는 당시 주지스님이 목숨 걸고 마루 밑이나 바닥 혹은 부엌의 깊숙한 곳에 숨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尹, 2010: 230).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시절 식수 공급을 위하여 만들어졌던 우물도 선택과 배제의 기억을 가진 장소이다. 우시마도는 식수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오카야먀번은 우시마도에 몇 개의 우물을 파도록 하였다. 다른 우물들은 말라서 없어졌으나 유카리 우물(ゆかりの井戸)만은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유카리 우물이 한국과 일본의 친선 증거로 중요한 유적이기 때문에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우물의 지붕 개선이나 뚜껑의 설치 등, 보존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조선통신사 유카리 우물을 지키는 모임(朝鮮通信使ゆかりの井戸を守る会2))’은 모금 활동을 하고 홍보 자료를 만들고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주민들의 치열한 노력 끝에 우물이 기억의 장소로 현재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정치적 힘의 구조에 의하여 차별받고 배제되어 사라질 뻔 했던 기억들이 개인의 선택과 이해에 의하여 포함이 되며 중층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기억과 장소를 둘러싼 배제와 차별의 정치가 개별 주체들과 국가, 개인 대 개인 다양한 층위로 경합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합들이 지금의 우시마도라는 지역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우시마도의 조선통신사 기억은 새롭게 창조되기도 한다. 일본 각지에서는 조선통신사를 지역의 축제로서 중요한 아이템으로 여기고 있으며,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전국의 주요한 도시들에서는 지역 활성화를 위한 기회로 붙잡고 있다(中村, 2017:21). 물론 사례연구 지역인 우시마도 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대마도 등에서는 이 곳보다 더 일찍부터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우시마도는 조선통신사 기억이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며, 문화 접변과 횡단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의 재현 행사는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국가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협력하며 협동적인 외교를 통해 국민들에게 우호 관계의 중요성을 인지시키고 인식을 공유하는 장이 된다(후지사와, 2017: 98). 과거 교류의 경관이 현재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지로 재현되는 것이다. 재현의 경관을 확인하기 위하여 행사 일정에 맞추어 우시마도를 방문하였다. 마을 회관 앞에 펼쳐진 경관은 에도 시대에 통신사가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민중들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경험들이 재현되고 있다.

혼마치와 다른 거리의 집집마다 출입문에는 발이 내려진 병풍들이 눈부시게 쳐져 있어 구경하는 남녀가 종일 거리게 넘쳤다. 마쓰리와 같았다.

- 아사히 시게아키 ‘앵무롱중기’쇼토쿠 원년 10월 4일 기사3)

아침에 오쿠역에서 도착하니 우시마도 간 특별 버스가 준비되어 편하게 행사가 열리는 마을 회관까지 갈 수 있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은 대학생들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이 아침부터 여기까지 자발적 의지로 찾아 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중략... 행렬이 시작되는 마을 회관 앞 공터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한복 입는 체험을 하기 위하여 외지에서 방문한 일본인, 한국인, 프랑스인 그리고 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한국과 일본의 남자들, 작은 북을 들고 짧은 치마저고리를 잎은 조선학교 여학생들, 사물놀이 공연을 위하여 밀양에서 건너온 고등학생들, 봉사자들, 관광객들, 행사 진행 주최자 그리고 언론 등 수많은 인파들이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 주며, 순간을 기억하고자 하였고, 모든 사람들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이 순간 여기에 있다는 사실도 흥분되는 일이다...

- 2017. 11. 05 연구자 관찰 기록 중-

과거의 외교사절이자 문화사절이었던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현재의 지역 축제로 재현되며 국가 수준의 외교 사절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중 수준의 외교와 문화 교류가 탄생하게 된다. 행사를 진행하고 기획하기 위하여 한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공조하고 사안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걸쳐 하나의 행사가 완성이 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 생성과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제가 이 행사에 거의 매년 참여하는데 한국 음식도 먹을 수 있고, 한복도 예쁘고 재미있어요.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솔직히 이 동네 사람들은 아베총리가 이상한 말을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한국을 좋아해요. 그건 어차피 그들의 일이고....

- 2017. 11. 05. 일본인 여성 봉사자와의 대화 중 -

현재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늘 직접 한복을 하고 행렬 행사에 참여하였다는 한 여성은 미디어나 정치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본인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본인 뿐 만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이야기 한다.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머물고 갔던 기억의 장소이자, 그 교류의 기억이 재현되는 우시마도라는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한국과의 연결을 발견하고, 국가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본다. 다양한 만남의 경험과 교류 경관의 재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정체성의 구조가 변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행렬이라는 가시화된 행사를 통하여, 그리고 우물 보존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우호의 경관을 재현하고 유지한다. 과거의 긍정적인 기억을 현재의 모습으로 소환함으로써, 의미와 가치를 상기시키는 기회가 되며, 이러한 주민들의 실천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2. 가라코오도리와 트랜스문화

우시마도에는 唐子踊り(가라코오도리)라는 문화가 있다. 우시마도 에키신사의 가을 축제인 매년 10월 네 번째 일요일에 봉납되는 춤으로 오카야마현 지정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이다. 이국적인 의상을 입은 남자 어린이 두 명이 젊은이들의 어깨를 타고 들어와 진자에 참배를 하고 진자 안에서, 작은 북, 대금,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축제 당일 마을의 보존회원의 어깨를 타고 들어오는데 이는 춤을 시작하기 전에는 땅에 다리가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아이 두 명은 지역에 살고 있는 6-7세 아이 중에 선발하고, 10-12세가 되면 교체가 된다(糟谷, 2013: 113). 춤은 1719년 일본을 방문하였던 제 9회 통신사의 제술관이었던 신유한이 저술한 ‘해유록’에 등장하는 소동대무(小童対舞)라는 기술에 기반 하여 조선통신사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尹, 2010: 228). 우시마도가 조선통신사의 기항지였다는 것과 의상이나 악기가 한국적이며 동자가 무동을 타고 등장하는 형태는 한국 민속의 보편적인 양상이라는 것이다(전금선, 2016: 2-3). 또한 가라코오도리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반주 선율을 담당하는 하야시가타의 기능, 앞부분을 변형시켜 반복하는 선율로 구성된 점, 우리 음악의 평조와도 가깝고 일본 가가쿠의 리쓰음계와 유사한 5음계를 사용한다는 점, 엇모리장단 등에서 볼 수 있는 2소박과 3소박의 혼합 형태가 나타난다는 점 등 조선 음악과 공통되는 여러 요소가 발견된다(임혜정, 2019: 78). 그러나 가라코오도리의 기원에 대한 인식이 늘 조선과의 관계 속에서 조명된 것은 아니다. 그 기원을 의도적으로 가공의 인물인 신공황후와 연결시키며 조선통신사와는 관계가 없는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로 설명하며 의미 변용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지역의 어르신들의 내러티브를 통하여 기억되고 있다(尹, 2010: 228). 가라코오도리의 기억은 전전(戰前) 신공왕후와 연결시키는 것에서 전후 조선통신사와 연결하고자 하는 견해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라코오도리에 관한 연구과 기원을 둘러싼 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의는 정리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지역 주민들과 지역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조선통신사와의 관련성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조선통신사의 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춤을 전적으로 모방하지도 않았고 일본 국내 치고마이와의 습합의 과정을 거쳤으며 더욱이 원형 그대로 전승되지 않았다. 조선통신사의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춤 적인 영향관계에 있어서는 일본 국내 예능으로부터의 전파에 무게가 실린 현지 창작설에 정합설을 두고 있다(전금선, 2016: 289). 우시마도라는 작은 항구 마을에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가며 췄던 춤은 지역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문화 교류와 전파가 이루어진다. 지역의 사람들은 전파된 문화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억에 남겨진 모습, 유사한 다른 춤들, 지역의 문화들과 자연스럽게 융합시키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일본만의 고유한 문화도 아니고, 한국의 전통적인 춤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극도로 연결되어 있고, 얽혀 있다. 내부에 외부가 첨가되거나 외부의 것이 내부에 들어오며 상호 침투가 일어났다. 전형적인 트랜스문화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가 생성되었다. 이렇게 연결되고 얽혀있는 문화가 현재에는 한 지역의 문화재로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 또 다시 변주가 일어날지 모르는 과정의 상태에 있다.

조선통신사는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재현으로서의 조선통신사, 지역의 경관으로서의 조선통신사, 지역주민들의 정체성으로서의 조선통신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양국의 우호와 협력이 만들어낸 문화, 경관, 기억들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여전히 양국을 다층적으로 협력하게 한다. 조선통신사는 동아시아, 특히 한·일 양국에 바람직한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내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상호교류에 커다란 역할을 달성하였다(中尾(손승철 역), 2012: 11). 이는 문화유산의 보호, 지역경관의 유지, 춤의 전승, 행렬 행사 등 현재에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며, 다양한 층위에서 ‘성신(誠信) 교린’의 의의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서로 싸우지 않고 진실을 가지고 교제하는 성신의 교제는 우시마도라는 지역을 통하여 현재에도 지속되며 장소와 사람들의 정체성 즉 동아시아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Ⅳ. 트랜스문화학습과 유동하는 정체성

문헌연구와 현장답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학교의 문화교육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의 교사들이 함께 기획하고 실행 후 반성의 과정을 통하여 더 나은 방향 제시와 변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비판적 참여 실행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Kemmi, McTaggart & Nixon, 2014: 13). 2018년에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실시하고, 분석과 반성을 바탕으로 2019년에 다시 한 번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본고에서는 한국 학생들과의 수업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 첫 번째 학습 계획, 실행 그리고 반성
가. 계획하기

우시마도 주민들의 정체성은 국민국가라는 단층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우시마도라는 특별한 내러티브를 지닌 지역, 즉 한국이라는 나라와 연계된 초국적 장소에 자신을 귀속 시키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장소가 국가 수준에서 보자면 중심이라고 할 수 없는 작은 소도시이지만, 한국과의 관계 설정을 통하여 의미 있는 장소로 부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와 문화를 초월하는 학습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해상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에서의 수업 시도가 필요하다. 예컨대, 조선통신사 수업은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문화교류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해주었다는 국가 중심적 서술이 지배적이다. 이를 상대화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해상도를 조금 높여서 우시마도라는 지역, 지역의 사람들 그리고 지역의 경관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습을 고민하여 보았다. 학생들은 역사적 장소 학습을 통하여 그 장소들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과거의 기억들을 만나고 온다. 누구의 기억이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경관에 숨어 있는 전략들을 비판적으로 읽는 활동은 현재와 미래 삶을 보다 전향적으로 살 수 있게 해준다(류현종, 2005: 215-216). 국가 수준에서 본다면 조선통신사가 한양에서 에도까지 가는 여정 중 하나의 길목에 지나지 않지만, 그 보다 작은 수준에서 본다면 하나의 지역에 발생한 문화의 이동과 접변이며, 인간의 만남과 동아시아 네트워크 형성의 장이 된다. 신유한의 해유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악공을 시켜 북을 치고 피리를 불게 하고 두 동자에게 마주 보고 춤을 추게 하였더니 일본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때때로 종이와 붓을 가지고 와 글을 써 달라고 청하는 사람도 있어, 나는 더러 흥이 나는 대로 써주었다4).

한국에서 바다 건너 온 이방인에게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대화를 시도한다. 신유한은 비록 피곤하여 내키지 않았지만, 여러 선비들과 필담을 나누었다고 기록되어있다(신유한(이효원 역) 2011: 32-33). 우시마도라는 작은 마을에서 국경을 초월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용에 서술된 두 동자의 춤은 현재 가라코오도리로 지역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어 지역의 가을 축제에는 신사에서 공연이 된다고 하니 문화 횡단, 트랜스문화의 현상이라 하겠다.

국가 간 만남이라는 역사가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과거의 다양한 개인의 기억과 현재의 재현, 서술들에 집중하는 수업을 계획하였다. 최대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직접 경험한 한국과 일본의 개인의 이야기들을 교재화하기 위하여 한국은 신유한의 기행문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였고, 일본은 유사한 기록을 발견하지 못하여 직접 우시마도를 답사하며 수집한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하였다. 물론 개인의 기억은 그/그녀가 속한 국가라는 범주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그러나 개인의 기억과 국가의 기억은 동일하지 않으며, 국가의 기억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무수히 많은 개인의 기억들이 존재한다. 또한 집단이 아닌 개인의 기억은 사회적 관계, 경험, 교육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국경을 넘는다(차보은, 2020). 따라서 국가의 기억으로 배우는 조선통신사가 아니라 개인의 기억으로 배우는 조선통신사는 학생들에게 다른 배움의 경험을 줄 수 있다. 다양한 개인들의 기억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그 경관에 참여할 수는 없지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재현 행사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교류 속에 변형되고 생성되는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또한 새로운 기억으로 학생들의 내면을 구성하고 정체성을 형성 하는 요인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연구자가 마주하고 수집한 경관과 기억들을 토대로 대략적인 수업을 구성하여 보았다. 수업의 형식은 교사와 학생들이 상호 다양한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스스로 탐구가 될 수 있도록 한다.

표 1. 트랜스문화 학습 첫 번째 지도안 (1, 2차시)
단계 교수-학습 활동 자료(▸) 및 유의점(◈)
도입 ▣ 사진보고 생각해보기
* 교사 질문 듣고 생각해보기
프랑스인 소피씨는 왜 우시마도에서 한복을 입었을까?
▸ 우시마도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경관 사진
우시마도 초등학생들은 왜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었을까?
학생들의 예상 질문
- 우시마도는 어디에 있나요?
- 우시마도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 초등학생들은 언제, 어디서, 부채춤을 추나요?
- 누가 부채춤을 가르쳐 주나요?
◈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업의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이 마지막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전개 ▣ 지도에서 우시마도 찾아보기
*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갔던 지역들을 점으로 표시 해 둔 지도를 보고 무엇을 나타내는 지도인지 유추하여 보기
- 점들이 위치한 장소들의 지명은 무엇인가요?
- 장소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 어디에 많이 분포하고 있나요?
-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무엇을 나타내는 지도일까요?
▸지도 자료
◈ 장소들을 선으로 연결하지 않고 점으로 제시하여 학생들 스스로 연결을 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 조선통신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 해유록을 통하여 당시의 이야기 접하기(조선인의 이야기)
* 인터뷰 조사에서 수집된 우시마도 주민 이야기 들려주기 (일본인의 이야기)
*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 이야기
▣ 가라코 오도리의 탄생
- 해유록의 기록과 현재의 가라코 오도리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관련성이 있을지 유추하여 본다.
- 문화의 전파와 변용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 우시마도에서 있었던 일
*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우시마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인공이 되어 상상하여 견문록 작성하여 보기
* 과거의 우시마도 - 조선통신사라는 과거
* 현재의 우시마도 - 재현행사를 하는 사람들
* 미래의 우시마도 - ?
(미래에는 어떤 새로운 문화가 탄생될 수 있을까? 등)
▸해유록의 우시마도 관련 부분 이야기
-당시 사람들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관심, 몇 달간 집을 빌려주고 산 속에 산 이야기 등등
▸재현 행사 관련 경관 사진들
정리 소피씨와 우시마도 초등학생들에 대한 첫 번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새롭게 질문을 만든다면?
Download Excel Table
나. 실행과 반성

수업은 신유한의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기억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시작하였다. 개인의 기억이지만, 교과서에는 접하기 힘든 당시의 지역의 경관, 분위기, 교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조선통신사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다. 5-6명의 학생이 ‘아, 교과서에 있었어요’, ‘들어본 적 있어요’ 라고 대답을 한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1-2명의 학생이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거요’ 라고 대답한다.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복수성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역사를 획일화시킨 모습 중 하나이다(임지현, 2004: 23).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도 비슷한데, 일본에서 2차 대전 이전부터 1960대까지 통신사의 역사는 경시되거나 말살되었으며(吉野, 2004: 187-188),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보는 기억이 만연해 있었다.(이와카타, 2016: 108-109). 따라서 학생들이 단일한 내러티브가 아니라 복수의 서사, 타자의 시선에서의 서사가 필요하다.

1607년 3월, 임진왜란 이후 첫 사절단이 일본 땅을 밟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행의 한성부 출발은 1월 12일, 부산 출항이 2월 29일, 쓰시마의 부중 출발이 3월 21일, 4월 8일 오사카 도착, 4월 12일 교토 도착, 그리고 드디어 5월 24일 에도에 도착했다. 일행의 총 인원은 504명이었다………

물론 내부의 시선에서 작성된 기행문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항지와 날짜들을 통하여 조선통신사의 여정이 어느 정도의 기간이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으며, 긴 여행기간에 학생들이 기존에 알고 있는 ‘문화를 전해준 것’ 이외에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사고하게 한다.

교사: 여행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학생들: 임진왜란 이후요

교사: 임진왜란 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생들: 전쟁을 했죠.

교사: 그렇지, 전쟁 후 첫 사절단이 무슨 의미지?

학생: 친해지는 것

학생: 다시 교류하는 것

학생: 평화 .....

- 2018년 6월 18일 수업기록 중 -

학생들은 조선통신사 행렬이 다시 시작하게 된 날짜를 보고, 그 행렬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한다. 그리고 그 행렬이 무엇인가를 전해주기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후에 평화라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우리에게도 필요한 행사였음을 이해한다. 단순히 역사 서술의 인식론적 시시비비를 넘어서, 학생·시민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민족주의의 단단한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긴다(임지현, 2004: 33).

교사: (우시마도 사진을 보여주며) 아까 그 사진이랑 관계있는 그림이에요

학생: 통신사 맞이하기

교사: 지금 현재, 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한다고 해요, 다시 하는 거지 옛날에 했던 모습 그대로 재현을 하고 있어요.

학생: 지금 하고 있다고요?

교사: 네, 매년 10월에 해요. 왜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재현이라는 것을 하는 걸까?

학생: 많이 알리기 위해서

교사: 누가 재미있는 말을 해주었어요. 뭐라고 했냐면 ‘되게 좋았나봐요.’ 축제를 한다는 것은 즐겁다는 거에요. 즐겁지 않다는 거예요?

학생들: 즐겁다는 것

교사: 사람들이 재현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즐거운 일이라는 거겠죠? 뭐가 좋다는 걸까?

학생: 조선통신사가 왔을 때 그땐 친했잖아요. 일본이랑, 지금 여기 한국 사람들이 있으니깐

학생: 교류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학생들은 조선통신사 재현 행사의 현재의 의미를 알게 된다. 현재에 재현을 하는 이유는 그 활동이 즐거웠다는 것이고, 그 즐거웠던 상황은 서로 친했을 때, 우호적인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호적인 경관으로 가시화된 재현 행사는 직접 참여를 하지 않아도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는 그 느낌이 전달된 듯하다. 과거에 국가 간 중요한 행사였던 조선통신사는 현대에는 축제의 형태로 매개되어 문화가 이동하고 만나고 섞이는 모습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하여 우시마도의 사람들이 몇 달 동안 집을 비우고 산에서 생활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 조선통신사를 대접하기 위하여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우시마도의 각 개인들의 입장도 생각해보게 하였다. 하지만 수업 후 학생들의 소감문을 통해 의도대로 전달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 - 일본과의 친근함에 대해서는 몰랐는데 잘 알게 되었다.

  • - 우시마도에 가고 싶어졌다.

  • -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이 조선 통신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애국심 뿜뿜!

  • - 일본이 한국의 통신사를 보고 즐거웠다고 생각하니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우시마도라는 지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일본과 친밀함을 느꼈던 점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으나, 조선통신사의 과거와 현재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였던 수업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애국심’ 과 같은 표현들이 눈에 띈다. 왜 학생들에게 여전히 조선통신사는 한국이 문화를 전달하였다는 하나의 서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우시마도 지역주민들이 했던 노력들은 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일까? 라는 문제의식이 생긴다. 이 수업을 통하여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국가, 개인 그리고 문화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또한 문화 접변까지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는 아쉬움과 반성이 남았다.

2. 두 번째 학습 계획 실행 그리고 반성
가. 수정된 계획

두 번째 수업은 처음 시도에서 많이 부족하였던 조선통신사로 인한 문화의 이동과 접변 그리고 변화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구성하였다. 문화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변형되기도 하고, 새롭게 첨가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생성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수업을 목표하였다. 하나의 서사와 관련된 문제의식도 어쩌면 문화를 통해서 조금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반성으로 두 번째 시도에서는 가라코오도리에 얽히고 섞인 문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조금 더 보강하여 수업을 계획하였다. 수정되고 추가된 수업 계획은 다음과 같다.

표 2. 트랜스문화 학습 두 번째 지도안 (변경된 부분 중심)
단계 교수-학습 활동 자료(▸) 및 유의점(◈)
전개 ▣ 가라코오도리는 어느 나라의 문화인가?
 - 사진을 보고 어느 나라 문화인지 생각해보기
 - 가라코오도리와 관련된 읽기자료를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
 - 모둠별로 정리해서 발표하기
 - 어느 나라 문화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 관련된 예시로 다시 생각해보기 예) 팥도너츠는 어느 나라의 문화일까?
▣ 문화 이동과 접변
 - 기원을 따지면 특정한 나라의 문화인 것 같지만, 현재에는 서로 섞여 있고 얽혀있는 문화들을 살펴보기
 - 문화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가라코오도리 관련 읽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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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코오도리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문화와 국가와의 연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그 긴밀한 관계에 대하여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교사의 발문으로 인하여 학생들은 가라코오도리를 일본 혹은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료를 읽고 상호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비교해보는 기회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익숙한 식문화의 예시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기존의 사고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두 번째 실행과 반성

두 번째 실행은 조선통신사라는 교류를 통하여 발생된 문화 교류와 접변에 초점을 두고 수업을 실행하였다. 학생들에게 가라코오도리와 조선통신사와의 관련성을 이야기 한 후, 사진을 보여주고 어느 나라의 문화인 것 같은지 물어보니 25명 중 3명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일본 문화라고 대답을 한다.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조선통신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학생들은 그 기원과의 관계를 통하여 당연히 한국 문화라고 대답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예상과는 달랐으나 수업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자가 목표하는 바는 한 쪽으로 쏠려있는 사고의 방향이 다른 곳으로도 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에서 바꾸어 자기만의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와 같은 이유로 일본의 문화로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많은 경우 가라코오도리라는 명칭 자체와 시각적으로 의상이 한국의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읽기 자료를 나누어 주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 하였다. 그 후 다시 학생들에게 생각을 정리해보게 하였다. 처음 보다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한국 문화라고 대답하였으나, 여전히 학생들은 일본 문화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학생들에게는 ‘현재’, ‘눈에 보이는’ 문화의 지형이 중요한 듯하다. 읽기 자료를 통하여 더 확고히 일본 문화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다음으로 팥도너츠를 이용하여 연결되는 다른 사례를 이야기 하였다.

연구자: 그렇다면 팥도너츠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 유럽?

학생: 일본?

학생: 아무데도 아니다.

학생: 지구?

학생: 외계?

연구자: 그럼 이거는? 부채춤은?

학생: 우리나라?

학생: 중국 아니야?

학생: 한국, 한국

연구자: 왜?

학생: 우리나라에서 추니깐

연구자: 여러분 부채춤 춰요?

학생들: 아니요

연구자: 아까 가라코오도리는 일본에서 많이 추니깐 일본의 문화라면서요?

학생들: 흠...

연구자: 이 사진은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행사에서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모습이에요. 그럼 이건 일본 춤인가?

학생: 아니요!

연구자: 여러분은 안 춘다면서요.

학생: 예전에는 췄어요.

연구자: 가라코오도리도 예전에는 한국에서 춘 춤이라는데? 일본의 이 초등학교 학생들은 오랫동안 부채춤을 행사에서 추고 있다는데요? 그럼 이건 좀 있으면 일본 문화가 되는 건가?

학생: 아니요.

연구자: 왜요?

학생: 우리가 먼저 했으니깐

학생: 먼저 한 게 중요하죠!

학생들은 당연히 한국의 문화라고 알고 있는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있는 장면에서는 ‘먼저’ 한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채춤은 한국 문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형이 변형된 가라코오도리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화되기 시작한다. 먼저 한 것이 중요하니 부채춤은 당연히 우리 문화라고 생각한 것과, 한국에서 시작되었으나 긴 시간이 지나 변형된 가라코오도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일본문화라고 여긴 자신들의 생각에 혼돈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가라코오도리도 한국문화인가?’, ‘진짜 부채춤이 나중에 일본문화가 되는 건가?’, ‘어느 나라 문화라고 말하기 힘드네..’ 등등 학생들에게서 다양한 의문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린 학생들이 문화 변용이 일어나는 긴 시간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라코오도리를 통하여 특정 문화가 어느 한 나라와 완벽하게 연관 짓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수업의 마지막에 학생들은 ‘헷갈린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문화라는 것이 이동을 통하여 서로 만나고 변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도 한다는 마무리를 하며, 수업을 통하여 ‘헷갈리는 경험’을 하였다면 성공한 학습이었다고 이야기하자 안도하는 표정이다. 수업 소감을 통하여 횡단하는 문화를 어느 정도 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 - 항상 문화는 한 나라의 특성이고, 모든 것이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모든 것이 구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어려웠지만 좋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 - 가라코오도리, 팥도너츠, 부채춤은 어느 나라의 문화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 -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바뀌고 교류도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것 등 많이 알게 되었고 좋았다.

  • - 수업을 하고 나니 각 나라의 문화가 여러 가지로 섞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라코오도리도 어느 나라의 문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조선통신사가 처음 시작했지만 몇 백년이 지나서 바뀌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수업이었다.

물론 아직도 ‘문화는 국가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몇 명 학생들은 국가와 문화의 관계를 재고하고, 문화 혼종, 문화의 이동과 변화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수업을 뒤에서 함께 들은 담임교사는 누구보다 새로움을 경험한 사람이다.

보통은 초등 수준에서는 지리적으로 보자나요. 그래서 보통 국가의 개념, 정치적으로 본다면 국가의 개념, 지리적으로 본다면 뭔가 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서쪽 이렇게 하는데 국가를 벗어나서의 문화를 다룰 때는 보통, 국경선을 기준으로 이 나라에서 서로 이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공유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니면 의식주 양식 보통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보통 국제이해교육 수업을 하면 세계시민교육? 그거 하면서 거기서 오시는 분들이 그 나라의 문화를 설명해주시니깐, 애들이 기본적으로 문화라고 하면 어떤 나라에서 공유하고 있는 의식주 양식 또는 언어 이런 거를 문화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가르치고 근데 경계가 허물어져서 전달된다. 그러면서 변경될 수 있다, 요런 거는 보통 그런 쪽은 가르치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는 보통 문화라는 것은 뭔가 되게 배타적인 개념으로 가르치는 거겠죠? 유럽의 문화는 이렇고, 러시아는 이렇고 이렇게 가르치지, 이게 이렇게 우리나라에 넘어와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적용되어서 변화되어서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보통 이렇게는 가르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그런 관점에서 지도해 본적이 없어서, 되게 관점이 변화가 새로웠어요. 저도 약간 놀랐거든요.

- 2019년 10월 ○일 담임교사와의 인터뷰 중에서 -

담임교사는 몇 번이나 ‘보통’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교육과 차별되는 수업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인지 하지 못하였으나, 자신이 했던 수업이 ‘배타적인’ 문화 개념이었던 것 같다고 반성하기도 한다. 국가를 경계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단정 지을 수 없고, 섞이고, 어려운 ‘문화’를 만나는 경험들을 통하여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정체성도 조금씩 유동하고 있다.

Ⅴ. 결 론

트랜스문화학습은 타자와 타문화의 시선으로 내부를 마주하고, 적극적으로 경계를 횡단하고자 시도하는 교육방법이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며 경합하는 기억들이 존재하지만, 트랜스문화의 기억이기도 하다. 우시마도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과거 그리고 현재의 재현 모습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상호 의존적이며, 혼성과 얽힘이 일어났다. 해유록에서 신유한은 제한적이기는 하였으나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서 조선을 성찰하려는 면모가 보였다. 일본의 앞선 점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그에 비추어 조선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이효원, 2011: 219). 또한 우시마도 지역 주민들의 기억 속의 조선통신사는 내부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상당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 있는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수업 후 학생들의 반응은 연구자가 목표하였던 것이 아니었으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형성되어 있는 강한 경계의 벽은 쉽게 넘을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반성을 바탕으로 두 번째는 트랜스문화에 조금 더 집중한 수업을 시도하였다. 모든 학생들이 기대했던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실행보다는 유의미한 변화들이 발견되었다. 두 번의 실행으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겠다.

첫째, 학생들 인식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서사라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지난 몇 년간 공교육이라는 틀에서 단일한 내러티브만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학생들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하고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경계를 넘는 수업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생들 뿐 만 아니라 교사들도 ‘경계를 넘는 경험’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교육받은 혹은 경험한 단일한 서사, 경계 진 문화라는 인식은 교육 내용으로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학생을 앞에서 이끄는 사람인 교사의 경험, 실천적 지식이 수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교사의 경험 자체가 국경을 넘어야 할 듯하다.

셋째, 트랜스문화라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이것이 정체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수업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문화를 정태적이고 국가를 중심으로 구분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물론 두 번째 실행에서 ‘헷갈리는’ 경험을 하며 국가=문화라는 사고에 균열이 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인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지식 형성의 과정, 인식의 배경 등을 충분히 조사하고, 조금 더 근본적이고 점진적인 접근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미약하기는 하였으나,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는 학생들은 우시마도라는 지역 학습을 통하여, 국가 간의 만남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 개인의 기억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그곳에서 일어났던 만남과 교류에 집중하는 수업을 통하여 학생들은 친근함, 앞으로의 기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발견된다.

인간은 공간을 점유하고 살고, 개별 주체들의 경험을 통하여 공간은 장소가 된다(Tuan, 2001). 의미 있는 장소에서의 개인의 경험은 기억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는 개인의 아이덴티티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Proshansky, 1978; Lynch, 1981: Gillian, 1995). 학습자의 의미 있는 경험을 생각하는 교육(Dewey, 1910)의 공간에서 학생들이 어떤 경험을 통하여 진정한 교육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수적일 것이다. 공교육이라는 구조를 형성하는 국가라는 틀과 글로벌화로 인하여 국가의 경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교육적 시도들이 필요하다. 한국인이면서 동아시아 시민이고, 세계시민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긍정적인 관계 설정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 사례들이 개발되고 수업 결과가 공유되어야 한다(남호엽·차보은, 2017). 물론 개인의 역량, 정체성, 기질, 전략으로서 트랜스문화는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험’으로서의 트랜스문화학습은 단일하고 균일했던 정체성 교육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여긴다. 조선통신사라는 한·일 교류의 기억은 그 자체로 국경을 넘은 기억이지만 현재의 재현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경계 넘기가 시도되고 있으며, 가라코오도리라는 춤을 통하여 트랜스문화 자체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 번의 시도로는 인식 전환이 쉽지 않다. 이러한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사례 속 인간의 경험과 기억들을 교육의 실천적 상황으로 가지고 온다면 횡단과 섞임을 상상하는 동아시아공동체나아가 세계시민으로서의 인간형성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Notes

* 이 논문은 2018년 8월 Commission on Geographical Education(CGE) - International Geographical Union(IGU) in Quebec, 2019년 1월 글로벌교육연구학회, 2019년 10월 한국사회교과교육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하였음.

1) 트랜스문화는 ‘초문화’ ‘문화횡단’ ‘트랜스문화’ 등 다양한 번역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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